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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두산공작기계·태림포장 '턴어라운드' 뒤엔 룩센트가 있었다
두산공작기계는 2016년 초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와 토종 컨설팅 회사 한 곳을 고용했다. 룩센트라는 이름의 이 회사 인력들은 두산공작기계 제품을 샅샅이 분석한 뒤 “제품 조작판의 화면 프레임 재질을 금속에서 강화 플라스틱으로 바꾸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문제는 기존 조작판 화면 프레임이 제품마다 디자인과 크기가 다 달랐다는 점이었다. 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하려면 사출금형 방식을 써야 하기 때문에 룩센트는 세 가지 종류로 프레임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설계팀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필요성은 수긍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수십 가지였다. 룩센트와 두산공작기계의 핵심 인력으로 구성된 경영개선 프로젝트팀은 그때마다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3개월여의 줄다리기 끝에 모든 제품의 조작판 화면 프레임이 세 가지 종류로 표준화됐다. 원가절감률은 60%에 달했다. 룩센트팀이 4개월 동안 제시한 설계 최적화 아이디어는 677건. 이 중 137건이 채택돼 50억원 가까운 원가가 절감됐다. 룩센트는 올해까지 이어진 컨설팅 기간 동안 총 226억원의 경영개선 효과를 냈다.

‘공장밥’ 먹어본 컨설턴트들

공과대학 출신으로 LG화학 생산 현장에서 일하던 오승목 대표(사진)가 2008년 룩센트를 차린 건 기존 경영 컨설팅업체의 한계를 실감해서다. 경영학과 출신의 컨설턴트들이 제시하는 문제 해결방법은 일견 옳은 얘기였지만 현장에서 잘 먹혀들지 않았다. 기존 컨설팅업체들이 제시하는 ‘큰 그림’과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컨설팅 회사가 있다면 경쟁력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PEF 운용사들의 경영권 인수가 늘면서 PEF와 피인수기업 직원 사이에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오 대표는 ‘공장밥’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공과대학 출신들로 팀을 꾸렸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과 출신으로 노틸러스효성과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하던 이주명 상무와 정재상 이사가 대표적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오 대표(경희대 화학공학과-LG화학), 황태영 부대표(서울대 기계설계학과-시카고대 경영학석사-삼성탈레스), 최병식 이사(한양대 기계공학과-현대중공업) 등 룩센트의 주요 인력들은 예외 없이 이공계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오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창업 10년 만에 룩센트의 고객사는 MBK파트너스, IMM 프라이빗에쿼티(PE), VIG파트너스 등 11개 PEF 운용사를 포함해 총 42개로 늘어났다. 지금까지 고객사들에 제공한 경영개선 효과는 원가 절감과 추가 수익을 합쳐 한 개 회사당 평균 115억원, 총 4830억원에 달한다.
[마켓인사이트] 두산공작기계·태림포장 '턴어라운드' 뒤엔 룩센트가 있었다
현장과 경영진 사이 통역사 역할

룩센트라는 회사 이름은 ‘현장의 관점에서 100분의 1(Cent)까지 세밀하게 본다(Look)’는 뜻이다. 현장 실무자들을 움직이려면 현장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겼다. 룩센트 컨설턴트들은 특히 투자은행(IB) 뱅커나 경영 컨설턴트들이 쓰는 언어와 생산 현장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는 것을 숱하게 목격했다. PEF 운용역들과 피인수기업 현장 인력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자처한 이유다.

예를 들어 룩센트는 ‘실적 개선을 위해 앞으로 1년간 재고를 10% 줄입시다’라는 경영진의 언어를 ‘지금까지 3개 업체에서 받던 구매 채널을 6개로 늘려 재고를 10% 줄입시다’라고 현장에 통역한다. 2015년 대한전선의 경영진단을 맡았을 때는 ‘중요한 고객을 잃지 않으려면 때로 저가 수주도 필요하다’는 현장 실무자들의 주장을 ‘선제적 밸류엔지니어링(VE)’이라는 경영진의 언어로 통역했다. 제조 원가가 변화해온 누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 기술 발전에 따라 원가가 이만큼 절감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를 미리 반영해 낮은 입찰가를 제시하자”는 논리였다. 룩센트의 경영진단을 통해 대한전선은 173억원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입주 가정교사식 컨설팅

룩센트는 2014년 오비맥주의 경영개선 컨설팅도 맡았다. 오비맥주 경영진은 구매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원재료 구매 시 기존 거래처 1~2곳만 입찰에 참여하다 보니 좀처럼 구매 원가가 줄어들지 않았다. 구매팀 인력이 부족해 더 많은 원재료업체를 찾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룩센트팀은 인터넷과 전화번호부를 샅샅이 뒤져 국내에 있는 맥주 원재료업체 20여 곳을 찾아냈고 오비맥주에 납품의향이 있는 업체 4곳을 발탁해 5~6곳이 입찰에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IMM PE가 인수한 태림포장의 경영진단을 맡은 최병식 룩센트 이사는 고객사들이 포장 박스를 주문량보다 적게 받았다고 주장하며 대금을 깎으려고 하자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추운 겨울 시화공단 적재장에서 두 달 동안 고객사별 출하량을 일일이 세었다. 장부를 들이밀자 ‘진상고객’들은 말없이 대금을 지급해야 했다. 김영식 태림포장 대표는 이 일을 경험한 후 최 이사를 아예 회사의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한 PEF 관계자는 “기존 컨설팅업체의 경영진단은 해법만 알려주는 ‘입시설명회’라면 룩센트의 컨설팅은 함께 책상에 앉아 같이 공부하는 입주 가정교사”라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