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설립해 소득과 재산을 빼돌리는 방식 등으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역외탈세범에 대해 세무조사의 칼을 빼 들었다.

국세청은 6일 역외탈세 혐의가 짙은 37명을 선정해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들 조사 대상자는 조세회피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와 외환거래 정보, 해외 현지법인 투자·거래 내역, 개인의 해외 소득·재산 보유 현황 등을 종합 분석해 추려냈다.
역외탈세와의 전쟁… 올해 1.1조 추징
◆“사회 저명인사도 조사 대상”

이번에 조사 대상에 오른 37명 중엔 영국령 버뮤다의 법률회사 애플비에서 지난달 유출된 조세회피 자료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서 언급된 한국인 중 일부도 포함됐다.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조사 대상 명단에는 100대 대기업과 사회 저명인사도 들어 있다”며 “기업은 대부분 서울에 본사를 둔 곳”이라고 말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해외에서 번 소득을 숨기거나 △용역대가 등을 가짜로 지급해 법인자금을 유출하고 △해외 현지법인에 투자하는 것처럼 꾸며 사주가 투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해외 위장계열사와 거래하면서 단가를 조작하는 등 편법거래를 통해 법인자금을 유출하고 해외에서 받은 리베이트 등을 전·현직 직원 명의의 계좌를 활용해 국내에 몰래 들여온 사례도 있었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조사를 갈수록 확대하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역외탈세 혐의자 187명을 적발해 1조1439억원을 추징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추징한 1조1037억원보다 402억원(3.6%) 늘어난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228명을 조사해 사상 최대 규모인 1조3072억원을 추징했다. 10월까지 추세를 감안할 때 올해 전체 추징세액은 작년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역외탈세 끝까지 추적”

국세청은 작년과 올해 세무조사로 적발한 주요 역외탈루 사례도 상세하게 공개했다. 서비스업을 하는 A씨는 자신의 국내 법인이 보유한 영업권을 외국에 매각하면서 매각대금이 실제보다 낮은 것처럼 가짜계약서를 썼다. 그러면서 그 차액을 BVI(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로 받아 숨겼다. A씨는 결국 국세청에 덜미가 잡혀 회사는 1000억원대 세금을 추징당했고 자신은 고발당했다.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해외 지점을 통해 국내 기업에 광물을 팔고서도 해당 매출을 신고하지 않고 조세회피처 금융계좌에 숨겼다. B씨는 국세청에 적발돼 검찰 고발과 함께 300억원의 세금 추징을 당했다. 경영컨설팅을 하는 C씨는 해외 자회사를 외국 기업에 넘기고 받은 매각대금과 배당소득을 조세회피처 금융계좌에 은닉했다가 100억원대 세금을 추징당했다.

제조업을 하는 D씨는 외국 법인에 자금을 빌려주고 이면 계약으로 받은 신주인수권을 홍콩 페이퍼컴퍼니로 넘겨놨다가 200억원대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국세청은 “역외탈세는 국가의 세원을 잠식하는 국부유출 행위”라며 “끝까지 추적해 과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를 위해 올해부터 시작된 다자간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MCAA)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협정에 따라 BVI, 케이맨제도 등 100여 개국에서 금융계좌 정보를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기업들의 국가별 사업 활동, 해외 특수자 간 국제 거래 현황 등에 대한 분석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