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범지대서 안전 도시로… 인간 '진화실험'은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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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후드 프로젝트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 / 황연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640쪽 / 2만5000원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 / 황연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640쪽 / 2만5000원
“여러 다양한 식물로 뒤덮여 있고, 새들은 덤불에서 노래하며, 온갖 곤충이 나돌아다니고, 축축한 대지를 지렁이가 헤집고 다니는 뒤엉킨 강둑(tangled bank)은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마지막 문단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화’라는 같은 법칙에 따라 생겨난 수많은 종이 어우러진 자연에 대한 예찬이다.
하지만 인간은 예외였다. 진화론은 생물학 영역에 국한됐다. 인간의 신체, 기본적 욕구와 충동, 문화와 행동의 다양성은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고유한 것이어서 진화론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에드워드 윌슨이 1975년 《사회생물학》을 출간한 이후 인간과 나머지 생명들을 갈라놓은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화론이 과학의 렌즈를 통해 인간 삶의 조건을 관찰하는 방법을 제공하면서 1980년대 후반에는 진화심리학 진화인류학이 등장했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그 대상을 전체 학문 영역으로 넓히고 진화 과학이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책을 쓴 데이비드 슬론 윌슨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는 개체 간의 경쟁에서는 이기적 개체가 유리하지만 집단 간 경쟁에서는 구성원이 협력적이고 이타적인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집단선택이론을 주창한 진화생물학자다.
그는 “진화론을 통해 인간 삶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진화 과학이 교육·도시·경제·인종·성차별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런 가능성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탐구해왔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실험 사례와 그에 따른 시사점을 담고 있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사는 도시다. 그는 인간 사회와 도시를 개미나 말벌 같은 사회성 곤충 군락과 비슷한 초유기체로 본다. 초유기체의 기반이 되는 구성원 간 협력과 이타성이 도시를 진화, 발전시키는 요인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시는 진화의 현장이다.
책 제목인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저자가 20년 이상 살던 뉴욕주 빙엄턴을 대상으로 한 사회실험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BNP)’에서 따왔다. 윌슨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 빙엄턴을 현생인류의 일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관찰하는 현장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여기서 공립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타인을 돕는 데 대한 생각, 갈등 해결 방식, 지역사회 기여 여부 등의 친사회성을 조사해 점수를 매겼다.
친사회성 점수와 자료를 지리정보시스템(GIS)과 결합해 지도를 작성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친사회성이 높은 곳은 안전한 주거지역인 데 비해 낮은 곳은 우범지역 근처였다. 저자는 이를 ‘선의 언덕’과 ‘악의 골짜기’라고 이름했다.
또한 사회적 지원, 빈부 격차, 인구밀도, 인종 구성 등이 친사회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골짜기를 언덕으로 만드는 데 나섰다. 이웃과 친밀하고 신뢰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친사회성이 은행 예금이 복리로 불어나는 것처럼 확장될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2003년 시작된 BNP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진화의 망치질’이 만들어낸 인간 본성이 사회·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혀낸 이 성과는 2009년 세계적인 학술지 ‘진화와 인간행동’에 게재될 만큼 주목받았다.
책에는 BNP 외에도 핼러윈 때 사탕을 얻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를 얼마나 주는지, 크리스마스 장식에 얼마를 들이는지 등 기발하고 다양한 조사와 실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사례가 실려 있다. 노인들의 행동유전자를 분석해 그 결과를 인생경로나 기대수명과 비교하는 ‘우리의 삶, 우리의 유전자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빙엄턴대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집단과 수행한 학제 간 융합연구 프로젝트 ‘에보스’, 진화학의 최신 연구사례 등도 눈길을 끈다.
다양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악의 골짜기를 선의 언덕으로 들어올리려는 저자는 이렇게 자신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빙엄턴을 고찰한 지 5년이 흐른 뒤 나는 골짜기를 어떻게 언덕으로 높일 것인지 조언할 수 있는 굳건한 위치에 서게 됐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하지만 인간은 예외였다. 진화론은 생물학 영역에 국한됐다. 인간의 신체, 기본적 욕구와 충동, 문화와 행동의 다양성은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고유한 것이어서 진화론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에드워드 윌슨이 1975년 《사회생물학》을 출간한 이후 인간과 나머지 생명들을 갈라놓은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화론이 과학의 렌즈를 통해 인간 삶의 조건을 관찰하는 방법을 제공하면서 1980년대 후반에는 진화심리학 진화인류학이 등장했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그 대상을 전체 학문 영역으로 넓히고 진화 과학이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책을 쓴 데이비드 슬론 윌슨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는 개체 간의 경쟁에서는 이기적 개체가 유리하지만 집단 간 경쟁에서는 구성원이 협력적이고 이타적인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집단선택이론을 주창한 진화생물학자다.
그는 “진화론을 통해 인간 삶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진화 과학이 교육·도시·경제·인종·성차별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런 가능성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탐구해왔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실험 사례와 그에 따른 시사점을 담고 있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사는 도시다. 그는 인간 사회와 도시를 개미나 말벌 같은 사회성 곤충 군락과 비슷한 초유기체로 본다. 초유기체의 기반이 되는 구성원 간 협력과 이타성이 도시를 진화, 발전시키는 요인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시는 진화의 현장이다.
책 제목인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저자가 20년 이상 살던 뉴욕주 빙엄턴을 대상으로 한 사회실험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BNP)’에서 따왔다. 윌슨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 빙엄턴을 현생인류의 일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관찰하는 현장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여기서 공립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타인을 돕는 데 대한 생각, 갈등 해결 방식, 지역사회 기여 여부 등의 친사회성을 조사해 점수를 매겼다.
친사회성 점수와 자료를 지리정보시스템(GIS)과 결합해 지도를 작성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친사회성이 높은 곳은 안전한 주거지역인 데 비해 낮은 곳은 우범지역 근처였다. 저자는 이를 ‘선의 언덕’과 ‘악의 골짜기’라고 이름했다.
또한 사회적 지원, 빈부 격차, 인구밀도, 인종 구성 등이 친사회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골짜기를 언덕으로 만드는 데 나섰다. 이웃과 친밀하고 신뢰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친사회성이 은행 예금이 복리로 불어나는 것처럼 확장될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2003년 시작된 BNP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진화의 망치질’이 만들어낸 인간 본성이 사회·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혀낸 이 성과는 2009년 세계적인 학술지 ‘진화와 인간행동’에 게재될 만큼 주목받았다.
책에는 BNP 외에도 핼러윈 때 사탕을 얻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를 얼마나 주는지, 크리스마스 장식에 얼마를 들이는지 등 기발하고 다양한 조사와 실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사례가 실려 있다. 노인들의 행동유전자를 분석해 그 결과를 인생경로나 기대수명과 비교하는 ‘우리의 삶, 우리의 유전자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빙엄턴대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집단과 수행한 학제 간 융합연구 프로젝트 ‘에보스’, 진화학의 최신 연구사례 등도 눈길을 끈다.
다양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악의 골짜기를 선의 언덕으로 들어올리려는 저자는 이렇게 자신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빙엄턴을 고찰한 지 5년이 흐른 뒤 나는 골짜기를 어떻게 언덕으로 높일 것인지 조언할 수 있는 굳건한 위치에 서게 됐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