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월9일은 강원 평창에 살던 아홉 살 이승복 군의 생일이었다. 그날 저녁 7시께 북한 무장공비 5명이 들이닥쳤다. 그해 10월30일부터 11월2일까지 세 차례 나눠 침투한 120명 중 일부였다.

그들은 승복군과 그의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 등 4명을 칼로 찔러 죽였다. 형 학관씨는 칼에 찔렸으나 살아남았다. 외출하고 돌아온 아버지도 칼에 찔렸지만, 목숨을 건졌다. 당시 한 신문은 공비가 승복군에게 “너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라고 물었고, 승복군이 “북한 공산당은 거짓말쟁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하자 죽였다고 보도했다. 이후 승복군은 반공의 상징이 됐다. 전국 초등학교에 동상이 세워졌고, 교과서에 실렸다.

1990년대 들어 승복군이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허위보도 논란이 불거졌다. 1997년부터 교과서에서 승복군 이야기가 빠졌고, 전국에서 동상이 철거됐다. 2009년 대법원은 당시 보도를 거짓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형 학관씨가 승복군이 그런 말을 했다고 증언했고, 이웃 주민들도 사건 직후 학관씨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발언의 진위와는 별개로 당시 일가족 4명이 무장공비에 살해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때 자수했던 무장공비 김익풍은 사건 41년 만인 2009년 승복군의 묘를 찾아 유족에게 사죄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