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들이 정부와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근로시간 단축(주당 68시간→52시간) 방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휴일근무(16시간)를 연장 근로에서 제외한 정부의 기존 행정해석 폐기를 통한 즉각 시행은 말할 것도 없고, 국회에서 여야가 협의 중인 직원 300인 이상 기업, 50~299인 기업, 5~49인 기업 등 규모별 3단계 도입 역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많은 중소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도, 현재 거론되는 방안들은 현장을 모르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만들어낸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회를 찾아 근로시간 단축의 단계적 도입을 요청한 데 대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한상의의 독자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선을 그은 것도 이 같은 현장 중소기업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현장의 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초래할 직접적인 위협으로 추가 고용에 따른 노동비용 증가와 함께 불확실한 인력수급 문제를 꼽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분석에 따르면 중소기업 인력 부족은 현재 27만 명 수준이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본격 시행되면 44만 명이 추가로 모자랄 것이라고 한다. 비용 부담이 크더라도 납기를 맞추고 공장을 돌리려면 인력을 더 써야 하는데, 종사자 5~19인의 영세 중소기업들은 필요 인력을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처지다. 그런데도 노사가 동의하면 주당 8시간의 추가 근로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제도’는 2015년 노·사·정 합의 사항인데도 이번 여야 협의 방안에서는 빠졌다.

문재인 정부는 ‘중소기업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장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까지 출범시켰다. 더더욱 중소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대기업에 비해 위기 대응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이토록 강하게 비명을 지르고, 간절하게 호소한다면 왜 그러는 것인지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마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긴 근로시간을 줄여가는 과정’이라거나 ‘근로시간에 관한 국제기준이 그렇다’ 등의 이런저런 핑계를 앞세워 외면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혁지상주의나 조급증으로 밀어붙인 정책들이 후유증을 낳은 사례는 많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해도 곳곳에서 ‘노노 갈등’을 키우고 있다. 세간에는 정부 여당이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염두에 두고 ‘선명성’에만 초점을 맞춘 개혁 몰아붙이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기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현실을 반영한 대책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종사자 5~19인의 영세 중소기업은 아예 따로 분류해서 실태조사부터 한 뒤 별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속전속결보다 실태 파악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