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퇴임하는 남승우 풀무원 총괄사장은 지난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는 웬만한 잘못도 넘어가지만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사회로부터 요구와 책임도 많아진다”며 “법이란 정글에서 싸우지 않게 만들어 놓은 규칙인 만큼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에 들어왔으면 지키며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33년 만에 퇴임하는 남승우 풀무원 총괄사장은 지난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는 웬만한 잘못도 넘어가지만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사회로부터 요구와 책임도 많아진다”며 “법이란 정글에서 싸우지 않게 만들어 놓은 규칙인 만큼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에 들어왔으면 지키며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남승우 풀무원 총괄사장(65)은 인터뷰 도중 “당연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안전한 식품을 만드는 것, 적자가 나도 해외로 나가는 것, 사업하기 위해 매일 공부하는 것, 3년 전 약속한 대로 65세에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떠나는 것 모두 “특별할 게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남 총괄사장은 올해 말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1984년 친구를 대신해 경영난에 빠진 풀무원을 맡은 지 약 33년 만이다. 그는 “65세에 은퇴하는 것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 모두 글로벌 기업에선 당연한 흐름”이라며 “이제는 사람 심리를 연구해 식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 채소가게로 시작한 풀무원을 한국을 대표하는 바른 먹거리 식품기업으로 키워낸 남 총괄사장을 지난 8일 서울 수서동 풀무원홀딩스 본사에서 만났다. 남 총괄사장은 한국경제신문사가 선정한 다산경영상 3회 수상자(1994년)이기도 하다.

▶은퇴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너무 좋습니다. 1984년 10여 명으로 시작한 풀무원이 이제 직원 1만여 명에 연 매출 2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바른 먹거리와 로하스 생활 기업 하면 사람들이 풀무원을 떠올립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전 세계에서 두부 1위 기업으로 통합니다. 망할 것 같은 상황에서 끌려들어왔다가 잘 마무리하고 나가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자의로 사업을 맡은 게 아니었습니까.

“알려진 대로 풀무원의 모태는 고교·대학 동창인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아버지 고(故) 원경선 원장이 일군 풀무원 농장입니다.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이죠. 저는 대학 졸업 후 4년4개월간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포기하고 현대건설에 들어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왔는데, 우연히 길에서 수배 중이던 원 의원을 만났습니다. 나는 직장생활 잘하고 있고 그 친구는 도망 다니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듬해 생계를 위해 아버지 농장 채소를 내다파는 가게를 낸 원 의원이 찾아왔고,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죠.”

▶사업이 제대로 안 된 모양입니다.

“제조업을 하라는 제 권유로 1983년 3월께 현미효소를 출시했습니다. 사우디에서 벌어온 2000만원을 투자했죠. 총판까지 끝냈는데 바로 다음달 신문에 나쁜 기사가 나면서 판매한 것을 회수하고 8000만원의 보증금까지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할 수 없이 집을 담보로 잡고 1억원을 빌렸습니다. 한 달 월급이 37만원이던 시절이었죠. 다음해 1월 현대건설을 그만두고 풀무원에 ‘올인’했습니다. ‘정말 재수가 없구나’ ‘어떻게 이렇게 꼬였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식품은 하나도 몰랐지만 상황에 몰려서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 원장님께 누가 되지 말자’ ‘망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경영했습니다. 저는 ‘수영장이론’을 좋아합니다. 지나가다 물에 빠지면 개헤엄을 치다 수영을 배우게 되거든요.”

▶‘식품 박사님’이란 말을 듣습니다.

“식품사업은 안전성을 놓고 공무원과 싸울 일이 많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생수는 내국인에게 판매할 수 없어서 규격조차 없었습니다. 좋은 균이 있는 게 정상인데 언론에서 문제로 삼았습니다. 매년 ‘풀무원 샘물에 균 득실’ 이런 기사가 나왔어요. 생수협회를 만들고 5년 정도 싸워서 1991년에 ‘생수 내국인 판매금지는 위헌’이란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싸우려면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미생물 석·박사도 그렇게 따게 됐습니다.”

▶풀무원이란 기업을 통해 바른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커진 것 같습니다.

“30년 전에는 유기농 식품이란 게 없었습니다. ‘바른 먹거리’를 안전한 음식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영양 균형까지 포함하는 로하스의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풀무원이 생각하는 로하스는 ‘몸과 마음, 생태계의 건강 유지를 위한 가치 실천활동’입니다. 사람의 건강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앞으로도 바른 먹거리는 지속적인 화두가 될 겁니다. ”

▶오너 경영자인데 이례적으로 ‘예고된 은퇴’를 했습니다.

“글로벌 기업 경영자의 평균 은퇴 나이가 65세입니다. 나이가 들면 기민성과 기억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령에도 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본인의 착각일 뿐입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역시 글로벌 상장기업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지난 9월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시작했고 12월1일 이사회에서 이효율 사장을 내년 1월1일자로 후임 총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습니다.”

▶기억에 남거나 아쉬운 일이 있나요.

“주부사원을 교육해 건강기능식품 방문판매 사업을 시작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외환위기 때 300명이 떠난 것도요. 언제 부도가 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며 1년을 보냈습니다. 5조원 매출을 목표로 했는데 40%밖에 달성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아쉽습니다.”

▶해외 사업이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미국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등에 진출했습니다. 네슬레, IBM, 다논과 같은 글로벌 회사도 해외 사업에서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데 평균 1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예측되지 않은 적자라면 모를까 예측된 적자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계획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법인세 인상 등 기업 환경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국가마다 발전단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 등을 보면 우리나라 임금도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충격 없이 올리느냐의 문제죠. 전 세계 11~15위를 왔다 갔다 하는 한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준비하고 맞춰가야 할 문제입니다.”

▶풀무원은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였습니다. 공유가치창출(CSV) 등의 개념이 나오면서 기업의 목적에 사회적 가치를 포함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마약 조직과 맥도날드 조직의 급여 구조가 깜짝 놀랄 정도로 똑같다는 비교가 있습니다. 좋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돈을 벌면 기업이고. 마약을 팔아 돈을 벌면 범죄집단인 거죠. 기업이 커지면 사회의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기대도 높아집니다. 영리사업을 하는 풀무원은 로하스 정신을 담은 제품과 서비스로 경제적 가치를, 풀무원재단은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CEO로 유명합니다.

“누가 경영 비결을 물어보면 그냥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했다고 말합니다. 직원들에게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책이나 혁신에 관한 책도 나눠줍니다. 최근엔 심리학 책을 많이 줬습니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커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이대열 예일대 교수의 《지능의 탄생》 등이 인상 깊었습니다.”

▶은퇴 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이사회 의장 겸 상근고문을 맡게 됩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 심리에 대한 공부를 하는 데 쓰려고 합니다. 경영을 하면서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저 사람은 왜 저러는지 궁금하더군요. 풀무원연구재단에서 생명의 기원, 인간의 본성, 통합과 미래 등을 주제로 공부하려고 합니다. 10년간 연구해 누군가 저술에 활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싶습니다.”

■ 원혜영 의원이 본 남승우 사장
"법대 출신답게 업무 정의한 뒤 추진, 바른 먹거리 초심 지켜줘 늘 고마워"

자신이 시작한 사업을 넘겨받아 매출 2조원의 회사로 키우고 은퇴하는 친구에게 해줄 말은 없을까.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남승우 총괄사장에 대해 듣고 싶었다. 남 총괄사장 인터뷰 전 원 의원과 통화했다. 원 의원은 경영자로서 남 총괄사장에 대해 “과학경영이라고 해야 할까, 법대 출신답게 모든 일을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명확히 업무 특성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안 되면 공부하고, 꼼꼼히 따져 추진하는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30년 이상 흔들림 없이 윤리경영을 해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점이 바탕이 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남 총괄사장에게 사업을 넘겼을 것 같냐는 질문에는 “처음엔 형편이 어려웠던 나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사업적으로 엮였지만 내가 아는 경영자 중 능력 면에서 ‘톱’에 든다”고 평했다. 이어 “무엇보다 바른 먹거리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잘 지키며 풀무원을 이 정도로 키워 온 남 총괄사장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남 총괄사장의 단점 한 가지만 말해 달라고 하자 “성공한 경영자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만 하느라 빡빡하고 여유가 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원 의원의 이런 평가를 전하자 남 총괄사장은 “55세까지는 진짜 일만 했다”며 “그래도 그때부터는 마라톤 풀코스를 세 번 완주하고, 스키도 배웠다”고 응수했다. 그는 “지금도 용평리조트에 가면 최상급 레인보우 코스에서 10번 이상 연속으로 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유정/김보라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