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자율성 침해하고 정부권력 통제장치 없어
인간 약점 치유케 하는 자유시장만이 번영의 길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자유주의경제철학아카데미 원장 >
정부가 인간 심리를 이용해 ‘유인구조’를 잘 설계하면 ‘강제’를 수반하지 않고도 바람직한 행동을 부드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고 넛지론은 목소리를 높인다. 비만식품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백화점 진열을 조작하거나 가입 포기 요청이 없으면 노동자의 저축 가입을 자동화하는 것, 술 담배 도박 경마 등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부과되는 죄악세, 성과에 기초한 정부의 인센티브 차별화 등 넛지를 통한 공공정책은 다양하다.
넛지론의 등장으로 복지 증진, 건강·환경 개선 등 공공선을 달성하기 위한 길이 활짝 열렸다고 환호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말로 넛지가 번영을 위한 패러다임인가. 유감스럽게도 그 답은 부정적이다.
우선 정부가 편견과 감정에 치우침이 없이 완전한 지식을 이용해 국리민복에 헌신한다는 넛지론의 주장부터 틀렸다. 첫째, ‘공공선택’의 시각에서 볼 때 정부가 국민 행복에 헌신하는 선량한 실체라는 낭만적 국가관은 잘못됐다. 둘째, 국가는 시민을 위해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그리고 환경 건강 복지 등 시민들이 행할 방향은 물론 그들이 취할 적절한 수단과 조치를 알고 있다는 전제는 사회주의 계획사상의 치명적 자만이다.
그럼에도 행동경제학은 정부가 인간 심리를 이용해 유인구조를 잘 계획하면 번영하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이는 허풍일 뿐이다. 인간 심리의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인간 두뇌가 자신의 두뇌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 이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 개입의 실패가 필연적으로 예정된 것은 그래서다.
정부가 시장보다 행동과 인지적 문제 해결에 더 적합하다는 넛지론의 전제도 틀렸다. 원래 시장의 존재 이유가 구조적 무지라는 ‘지식의 문제’ 때문이 아니던가. 시장은 옳은 지식을 찾아내고 잘못된 지식과 편견을 발견·수정해 인간의 인지적 약점을 깨우쳐 무지를 계몽하는 체제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넛지의 온정주의는 건강, 복지, 경제 활동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국가에 전가하는 정책이다. 이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스스로 자신의 무지·편견·오류를 극복하려는 의욕을 위축시킨다. 원래 인간의 편견과 인지의 오류 등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한 넛지가 그걸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넛지의 모순’이다. 따라서 인간을 타율적으로 만드는 게 넛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자율적이고 주권적이기 때문이 아니던가.
넛지가 부드러운 간섭주의라는 주장도 틀렸다. 저축 자동 가입은 탈퇴의 자유를 제약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탈퇴 허용은 그 제도의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장기(臟器)기증거부자 사전등록제도는 기증 찬성자의 장기를 죽을 때까지 공유재산으로 만드는 위험한 제도다. 개인의 자유와 사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넛지를 부드럽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넛지의 간섭주의는 우리를 ‘노예의 절벽’으로 이끌어가는 서곡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다이어트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비만세(肥滿稅)는 운동과 같은 노력을 위축시켜 체중 감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이제는 정부가 강제로 운동을 시키거나 헬스클럽 회원권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것도 효과가 없으면 식품금지 조치가 필요하다. 넛지의 간섭주의가 우리를 노예의 절벽으로 이끄는 이유는 넛지에는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자신을 자율적으로 만들고 지적인 약점을 치유해 번영의 길로 안내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라 자유를 침해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만을 금지하는, 정의의 율법을 구현하는 자유시장이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자유주의경제철학아카데미 원장 kwumi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