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21세기에 드리운 영국·일본 동맹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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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최강국과의 강력한 결속 연출
한국은 '어느 편이냐' 또다시 질문 받아
김동욱 도쿄 특파원 kimdw@hankyung.com
한국은 '어느 편이냐' 또다시 질문 받아
김동욱 도쿄 특파원 kimdw@hankyung.com
1902년 1월30일 영국 런던에서 ‘영·일 동맹’이 선포됐다. 19세기 세계 최강국 영국이 ‘영광스러운 고립’을 포기하고 선택한 최초의 동맹국은 뜻밖에도 극동의 일본이었다.
한 해 전인 1901년 주영 독일대사였던 헤르만 폰 에크하르트슈타인 남작이 세계적으로 팽창하던 당대의 ‘주요 2개국(G2)’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독·일 동맹’을 제안한 게 시초였다. 일본 내에선 러시아와 직접 맞서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까닭에 영국과의 동맹 체결에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안자였던 독일이 빠진 채 일본이 영국의 파트너로 간택됐지만 영·일 동맹 체결 이후 세계사의 흐름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북해와 발칸반도,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 대영제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큰 그림’에 따라 영국은 일본과 손을 잡았고, 일본은 영국을 뒷배삼아 러·일전쟁을 감행했다. 한반도와 만주, 중국대륙으로 침략도 이어갔다.
영국이 일본에 제공한 군함과 화약, 석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수집해 해저 케이블로 전달한 군사정보들이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한몫했다. 허울 좋은 중립을 표방하던 대한제국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것은 이 시대의 또 다른 비극적 장면이다.
100여 년 전 국제관계를 다시 되짚어본 것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계기로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가 당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표면적 이유뿐 아니라 떠오르는 강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패권국’ 미국이 일본과의 결속을 부쩍 강화하는 모습이 100여 년 전 영국과 일본의 모습에 오버랩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을 다녀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고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라며 ‘파트너’ 일본에 대한 친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북한의 ‘화성-15형’ 미사일 발사 등 북한 관련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긴박한 당사국인 한국의 통수권자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먼저 통화를 한다. 영국이 군함을 팔고, 군사정보를 제공한 것처럼 지난달 일본 방문 때엔 F-35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첨단무기 구매 논의를 심도 있게 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인도·태평양 구상’을 내놓으며 중국을 포위하길 원하는 미국의 뜻을 알아서 헤아리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국은 그런 와중에 한·미 정상회담 만찬장에 오른 ‘독도 새우’로 일본과 마찰을 빚었다.
한국의 처지는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은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는 대상이 됐다. 미국은 당연시되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한때 토를 달았다. 중국 방문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국 CCTV 아나운서는 노골적으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으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3불(三不)’ 발언을 요구했다.
‘한국인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겁주면 말을 듣는다’는 19세기 말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何如璋)의 인식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일의 결속이 강해지고, 주변이 혼란한 이때 한국이 취할 ‘현명한 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동욱 도쿄 특파원 kimdw@hankyung.com
한 해 전인 1901년 주영 독일대사였던 헤르만 폰 에크하르트슈타인 남작이 세계적으로 팽창하던 당대의 ‘주요 2개국(G2)’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독·일 동맹’을 제안한 게 시초였다. 일본 내에선 러시아와 직접 맞서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까닭에 영국과의 동맹 체결에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안자였던 독일이 빠진 채 일본이 영국의 파트너로 간택됐지만 영·일 동맹 체결 이후 세계사의 흐름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북해와 발칸반도,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 대영제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큰 그림’에 따라 영국은 일본과 손을 잡았고, 일본은 영국을 뒷배삼아 러·일전쟁을 감행했다. 한반도와 만주, 중국대륙으로 침략도 이어갔다.
영국이 일본에 제공한 군함과 화약, 석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수집해 해저 케이블로 전달한 군사정보들이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한몫했다. 허울 좋은 중립을 표방하던 대한제국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것은 이 시대의 또 다른 비극적 장면이다.
100여 년 전 국제관계를 다시 되짚어본 것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계기로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가 당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표면적 이유뿐 아니라 떠오르는 강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패권국’ 미국이 일본과의 결속을 부쩍 강화하는 모습이 100여 년 전 영국과 일본의 모습에 오버랩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을 다녀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고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라며 ‘파트너’ 일본에 대한 친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북한의 ‘화성-15형’ 미사일 발사 등 북한 관련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긴박한 당사국인 한국의 통수권자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먼저 통화를 한다. 영국이 군함을 팔고, 군사정보를 제공한 것처럼 지난달 일본 방문 때엔 F-35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첨단무기 구매 논의를 심도 있게 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인도·태평양 구상’을 내놓으며 중국을 포위하길 원하는 미국의 뜻을 알아서 헤아리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국은 그런 와중에 한·미 정상회담 만찬장에 오른 ‘독도 새우’로 일본과 마찰을 빚었다.
한국의 처지는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은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는 대상이 됐다. 미국은 당연시되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한때 토를 달았다. 중국 방문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국 CCTV 아나운서는 노골적으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으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3불(三不)’ 발언을 요구했다.
‘한국인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겁주면 말을 듣는다’는 19세기 말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何如璋)의 인식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일의 결속이 강해지고, 주변이 혼란한 이때 한국이 취할 ‘현명한 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동욱 도쿄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