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기업가와 벤처자금이 프랑스로 몰리고 있다. 유럽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가 친(親)기업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내놓은 각종 지원책과 노동시장 개혁정책 등에 호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프랑스의 벤처자금 조달액이 올해 처음으로 영국을 앞섰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인 취업비자 심사를 강화하고,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브렉시트)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영국 대신 프랑스를 선택하는 기술인력도 늘고 있다.
창업 열기에 불 붙인 마크롱… 프랑스 벤처 투자금, 영국 첫 추월
◆프랑스 찾는 기술인력 늘어

기업가와 투자자들은 “프랑스가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과 영국을 떠나는 창업가들이 프랑스를 택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첫 번째로 꼽힌다. 뇌인지 과학자인 뉴턴 하워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최근 파리에서 인공 뇌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ni20을 창업했다. 하워드 교수는 “프랑스는 양질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정부가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기술인력(가족 포함)이 최장 4년까지 프랑스에서 거주·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대폭 간소한 ‘프렌치 테크 비자’ 프로그램을 지난 4월 도입한 것도 인재 유입을 촉진하고 있다. 정부가 이주 비용 일부와 사무 공간도 제공한다. 이미 수천 명이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

무니르 마주비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은 “수백 명의 과학자가 프랑스로 오기 위해 비자를 받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재임 중 규제 강화와 징벌적 세금 부과를 피해 미국 실리콘밸리 등지로 떠난 기업인들도 프랑스로 돌아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영국 추월한 벤처자금 투자액

벤처캐피털(VC) 투자도 늘고 있다. 올해 1~8월까지 유럽 각국이 유치한 VC 자금을 조사한 결과 프랑스가 모금한 벤처자금이 27억유로(약 3조5000억원)에 달했다. 사상 처음으로 영국(23억유로)을 앞섰다.

같은 기간 독일이 조달한 벤처자금은 11억유로에 불과했다.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요하네스 후트 유럽대표는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 뒤인 6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100억유로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같은 달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 F’도 파리에 문을 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를 초혁신(hyper-innovation) 국가로 이끌겠다”며 “기업가들이 나라를 뒤흔들고 변혁하도록 독려하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프랑스의 창업 열기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 네이버도 스테이션 F에 입주해 각각 인공지능(AI)과 콘텐츠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노동·세제 추가 개혁 속도내야

마크롱 대통령의 기업·기술 친화 정책이 프랑스 내 창업을 촉진하고 있다는 것에 많은 기업가가 공감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 당선 후 실리콘밸리에서 프랑스 동남부 도시 엑상프로방스로 이동한 창업가 마이클 아마르는 “마크롱이 창당한 앙마르슈도 기업처럼 움직인다”며 “(글로벌 투자은행 로스차일드 출신인) 마크롱 대통령은 기업가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의회는 지난달 130만유로 이상 자산을 보유한 개인에게 물리는 ‘연대세’를 부동산 보유분에만 부과하고, 자산소득에는 기존 누진세율이 아니라 비례세율을 적용하는 세제개편안을 통과시켰다. 해고 요건 완화가 골자인 노동개혁안도 9월 의회를 통과했다.

프랑스 중앙은행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0.5%포인트 높은 1.7%를 기록할 전망이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아직 창업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견해도 많다. 마크롱 대통령의 추가 개혁 작업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마크롱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22년까지 33.3%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낮추기로 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