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3일 내놓은 가상화폐 긴급 대책이 현실도 파악하지 못한 채 허겁지겁 내놓은 졸속 대책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가상화폐 매매에 필요한 가상계좌를 개설해주는 은행은 계좌 소유주를 확인할 수 없는데도 은행에 확인 협조를 하겠다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가상계좌 발급을 금지한 것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 현실성 없는 대책으로 꼽히고 있다.
가상화폐 긴급대책,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
◆은행 “현실 모르는 대책”

가상화폐 대책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은행의 가상계좌 소유주 확인 대목이다. 정부는 미성년자 및 외국인을 대상으로 가상계좌가 발급됐거나 자금세탁 의심거래가 발생했는지를 은행이 확인토록 하겠다고 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현재의 가상계좌 운영 체제에선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상계좌는 은행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발급한 입금용 법인계좌다. 거래소에 직접 계좌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은행들은 세틀뱅크 등의 중개업자에 이를 전달해 다시 거래소에 지급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거래소는 지급받은 계좌를 토대로 매매를 원하는 이용자의 가상계좌를 생성한다.

은행 관계자는 “가상계좌는 일단 가상화폐 거래소에 들어간 이상 어떤 이용자에게 발급되는지 은행에서 알 길이 없다”며 “미성년자·외국인 가상계좌 발급 여부를 은행에 묻겠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고 전했다.

예외도 있다. 농협은행은 이달부터 일반 계좌와 직접 연계한 가상계좌를 발급하고 있다. 농협은행과 계약을 맺은 빗썸·코인원에 공급 중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일반 계좌와 연계된 형태이기 때문에 은행에서도 가상계좌 소유주를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면서도 “다른 은행들은 방식이 달라 소유주 파악이 어려운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은행에 협조를 구한 것은 가상계좌 소유주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은행의 자금세탁 의심거래 보고 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조항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명의로 거액의 자금이 오가는 것을 은행에서 파악해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 은행 임원은 “모든 은행들이 이상거래 탐지시스템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거래소 명의로 자금이 오가는 정황을 파악하려면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며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난색을 보였다.

◆외국인 우회 매매할 수도

외국인 대상 가상계좌 발급을 금지하는 것만으로 일명 ‘환치기’를 막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당수 외국인들이 국내 거주인의 계좌를 통해 거래하고 있어서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외국인이 직접 국내 거래소에 계좌를 등록하는 게 가능하기는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번거로워 외국인들이 꺼리는 편”이라며 “국내 지인이나 전문 출금책의 계좌와 연계된 전자지갑에 가상화폐를 보낸 뒤 이를 출금케 해서 다시 송금받는 방식이 흔하게 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가상계좌 발급을 감시하는 것만으로는 투기 정황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가상계좌 발급 없이 영업하는 거래소들도 있어서다. 코인네스트 등의 몇몇 거래소는 자체 법인계좌에 이용자의 자금을 입금받은 뒤 이를 예치금으로 전환해주는 방식을 쓴다.

한 가상화폐 전문가는 “국내에서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며 “정부에서 아직까지 실태 파악이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