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아세안에 대한 이해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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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중국' 과잉기대는 금물
중국 물량공세, 일본은 40년 공들여
낚는 법뿐 아니라 '낚싯대'도 필요"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중국 물량공세, 일본은 40년 공들여
낚는 법뿐 아니라 '낚싯대'도 필요"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지난주에 베트남 하노이 인근 ‘호아락 하이테크파크’를 돌아봤다. 베트남 정부가 야심차게 펼친 여의도 5배 넓이의 첨단산업 단지다. 아직은 터만 닦은 곳이 많아 먼지가 풀풀 날린다. 그러나 단지 내 최대규모인 한화테크윈 항공엔진공장 건설이 한창이다. 인접한 하노이과학기술대에선 미래 인재들이 ‘열공’ 중이다.
하지만 호아락의 구상부터 설계·조성·운영까지 턴키베이스로 맡은 게 일본이다. 단지 내 안내지도까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로고가 찍혀 있을 정도다. 1977년 후쿠다 독트린 이후 일본이 40년간 동남아를 안방으로 만든 실상이다. 중국도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으로 동남아에 수백억달러의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다.
우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포스트 차이나’를 넘어, 신(新)남방정책이 더해지며 ‘약속의 땅’이라도 된 듯하다. 남녀 사이가 그렇듯, 국가 간 관계도 지나친 환상과 기대는 금물이다. ‘가자, 아세안으로!’ 이전에, 아세안을 만만한 시장, 싸구려 관광지로 여기는 얄팍한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아세안은 올해 50년을 맞았다. 흔히 인구 6억5000만 명(세계 3위), 35세 이하 65%, GDP 2조6000억달러(6위), 연 5~6%의 빠른 경제성장 등이 매력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세안 10개국은 하나로 뭉뚱그리기 힘든 편차가 있다. 인구 2억6000만 명(인도네시아)부터 44만 명(브루나이)까지, 1인당 소득 1000달러대(캄보디아, 미얀마)부터 그 50배인 5만달러대(싱가포르)까지 천양지차다. 세계 3대 종교가 혼재돼 있고, 시장경제부터 공산주의까지 극과 극이다.
그럼에도 아세안은 ‘동등(equality)의 원칙’ 아래 운영된다. 매년 돌아가며 의장국을 맡고, 분담금은 똑같이 연 200만달러다. 누군가 돈을 더 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아세안 특사를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큰 나라에만 보낸 것이 현지에선 외교적 결례로 여겨진다.
‘4강 편중외교’에서 탈피해 아세안에 다가가는 신남방정책은 백 번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오해와 오류가 끼면 되레 역효과가 난다. 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은 “국내에서는 국가 연합체로서 아세안과 지리적 개념인 동남아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동남아 어딘가에 가는 게 아세안 외교가 아니란 얘기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 피상적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주역인 자바인이 공용어를 자바어(자바섬 언어)가 아니라 말라카 상인들의 언어로 채택한 의미를 아는가. 필리핀 영웅인 호세 리살도 한국에선 낯선 이름이다. 그렇다보니 현지인들이 불편해 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에 보낸 축하메시지에서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호찌민 주석의 애독서가 정약용의 《목민심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언급한 것은 오류다. 호찌민 행적이나 유품 12만 점 어디에서도 《목민심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세안 국가들은 대개 한국의 투자와 기술이전을 원한다. 성공 경험도 배우고 싶어한다. 아세안 정상들이 새마을운동에 감사를 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의 본사 이전을 은근히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득 4000달러 미만이 여섯 나라다. “물고기 잡는 법만 가르쳐주지 말고 낚싯대도 달라”는 요구가 흔하다. 앞서 진출한 기업인들은 “한류를 맹신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세안은 한·중·일이 각축하는 경제 요충지다. 중국과 일본의 물량공세가 버거운데, 우리만의 전략도 부재했다. 각개전투인 기업 진출, 피상적인 외교, 인색한 공적개발원조(ODA)의 한계다. 심지어 하노이과기대와 제휴한 국내 대학이 24곳에 달할 만큼 중구난방이다.
신남방정책은 아직 ‘어떻게(how)’가 없다. 민간이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고, 기업이 뛰고, 정부가 밀어주는 한국형 협력모델을 고민할 때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하지만 호아락의 구상부터 설계·조성·운영까지 턴키베이스로 맡은 게 일본이다. 단지 내 안내지도까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로고가 찍혀 있을 정도다. 1977년 후쿠다 독트린 이후 일본이 40년간 동남아를 안방으로 만든 실상이다. 중국도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으로 동남아에 수백억달러의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다.
우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포스트 차이나’를 넘어, 신(新)남방정책이 더해지며 ‘약속의 땅’이라도 된 듯하다. 남녀 사이가 그렇듯, 국가 간 관계도 지나친 환상과 기대는 금물이다. ‘가자, 아세안으로!’ 이전에, 아세안을 만만한 시장, 싸구려 관광지로 여기는 얄팍한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아세안은 올해 50년을 맞았다. 흔히 인구 6억5000만 명(세계 3위), 35세 이하 65%, GDP 2조6000억달러(6위), 연 5~6%의 빠른 경제성장 등이 매력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세안 10개국은 하나로 뭉뚱그리기 힘든 편차가 있다. 인구 2억6000만 명(인도네시아)부터 44만 명(브루나이)까지, 1인당 소득 1000달러대(캄보디아, 미얀마)부터 그 50배인 5만달러대(싱가포르)까지 천양지차다. 세계 3대 종교가 혼재돼 있고, 시장경제부터 공산주의까지 극과 극이다.
그럼에도 아세안은 ‘동등(equality)의 원칙’ 아래 운영된다. 매년 돌아가며 의장국을 맡고, 분담금은 똑같이 연 200만달러다. 누군가 돈을 더 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아세안 특사를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큰 나라에만 보낸 것이 현지에선 외교적 결례로 여겨진다.
‘4강 편중외교’에서 탈피해 아세안에 다가가는 신남방정책은 백 번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오해와 오류가 끼면 되레 역효과가 난다. 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은 “국내에서는 국가 연합체로서 아세안과 지리적 개념인 동남아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동남아 어딘가에 가는 게 아세안 외교가 아니란 얘기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 피상적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주역인 자바인이 공용어를 자바어(자바섬 언어)가 아니라 말라카 상인들의 언어로 채택한 의미를 아는가. 필리핀 영웅인 호세 리살도 한국에선 낯선 이름이다. 그렇다보니 현지인들이 불편해 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에 보낸 축하메시지에서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호찌민 주석의 애독서가 정약용의 《목민심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언급한 것은 오류다. 호찌민 행적이나 유품 12만 점 어디에서도 《목민심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세안 국가들은 대개 한국의 투자와 기술이전을 원한다. 성공 경험도 배우고 싶어한다. 아세안 정상들이 새마을운동에 감사를 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의 본사 이전을 은근히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득 4000달러 미만이 여섯 나라다. “물고기 잡는 법만 가르쳐주지 말고 낚싯대도 달라”는 요구가 흔하다. 앞서 진출한 기업인들은 “한류를 맹신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세안은 한·중·일이 각축하는 경제 요충지다. 중국과 일본의 물량공세가 버거운데, 우리만의 전략도 부재했다. 각개전투인 기업 진출, 피상적인 외교, 인색한 공적개발원조(ODA)의 한계다. 심지어 하노이과기대와 제휴한 국내 대학이 24곳에 달할 만큼 중구난방이다.
신남방정책은 아직 ‘어떻게(how)’가 없다. 민간이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고, 기업이 뛰고, 정부가 밀어주는 한국형 협력모델을 고민할 때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