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중국에 대한 관점이 필요하다
“매우 관심을 두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국빈방문 행사장에서의 취재진 폭행사건 직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내놓은 첫 답변이다. 우리말로는 건조하고 성의 없는 코멘트로 들리는데, 이번 사건의 앞뒤 맥락 속에서 파악해보면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사회에서는 공산당 중앙이나 중앙정부가 ‘관심을 두고 있다’고 공식화하면 지방정부나 이해관계자의 농간 및 입김이 차단되고 원칙 또는 관례에 따라 처리될 때가 많다.

문제는 중국 사회의 원칙과 관례가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를 때 나타난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한·중 정상회의 취지가 퇴색될까 우려해 취재진 폭행 사건을 뒤늦게 보도하면서 “중국 측이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는 해명 위주로 전달했다. 지난해 한 유명 중국 블로거가 ‘언론은 당의 이익보다 인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이런저런 불이익을 당한 뒤엔 관영 언론의 일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중대 보도의 경우 이중삼중의 사전검열은 당의 이익을 위해 당연시된다. 당의 리더십이 사회주의 강국을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그들의 경험칙은 한국 사회엔 생경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이 사안이 한국인의 감정에 생채기를 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바로 두 나라 체제의 차이다.

폭행사건 후 열린 한·중 정상회의 합의문을 압축해서 평가하면 ‘구동존이(求同尊異)’라 할 수 있다. ‘공통의 이익을 명확히 하되 견해가 다른 부분은 존중하며 절충해가자’는 것이다. 대만 당국과의 교섭에서도 곧잘 등장하는 이 원칙은 갈등 사안보다 중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더 큰 전략적 이익이 걸려 있을 때 제기돼왔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라는 갈등 사안이 존재하지만 전쟁 억제와 분업 강화라는 더 큰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해보자는 취지다.

이번 기자폭행 사건은 언론을 당의 선전도구나 기껏해야 내부고발자로 활용하는 중국 지도층에겐 가벼운 사안일 수 있다. 하지만 수교 24년 만에 맞닥뜨린 중국 외교의 생경한 민낯을 불편해하는 한국인들에겐 감정에 생채기를 남긴 것뿐 아니라 ‘중국 사회의 이질성’을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한번 이질성을 느끼기 시작하면 역지사지에 바탕을 둔 ‘존이(尊異)’도 어려워진다. 미·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현 정부도 중국과 전략적 이해를 추구할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헌법권력의 정점에서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중국 공산당과 달리 한국 행정 권력은 유권자의 분노를 무시했다간 자칫 쇠고랑까지 감수해야 할 처지다.

사드 보복 이후 한국 내에서 ‘차라리 유커들을 가려 받자’는 주장이 불거진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사드 배치를 눈엣가시로 불편해하는 중국 입장을 이해하는 한국인일지라도, 미국에 말 한마디 못하고 한국을 벌주는 듯한 중국에 정서적으로 호감을 느끼기 어렵다. 한국이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가적 자존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될 때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도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국가지도자가 한국 방문 중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해보라.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양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현명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주요 2개국(G2)급이던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격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 중국과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이 정한 ‘전략적 합작동반자’다. 그런 이웃나라 국민과 척을 지고서 존중받는 대국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박래정 < LG경제연구원 베이징대표처 수석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