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모씨(24)는 지난 10월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이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게시자는 같은 학교 학생 A씨(26). 분노한 김씨는 그간의 악플과 게시글을 모아 서울 강남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흐지부지됐다. “IP 추적이 어렵고 정황증거뿐”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김씨는 지난 11일 마포경찰서에 두 번째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수사에는 큰 기대가 없고 그저 하루하루가 괴로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고소는 너의 몫’이라며 대놓고 모욕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어난 사이버명예훼손·모욕 신고는 1만4908건이다. 2013년(6320건)과 비교하면 3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2014년엔 신고의 50%가량이 ‘공소권 없음, 혐의 없음’ 등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는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죄의 성립 요건이 까다로워서다. 황성욱 에이치스 변호사는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특정인을 모욕해야 죄가 성립된다”며 “표현이 경멸적인지에 대한 판단이 수사기관과 재판부에 따라 들쭉날쭉하다”고 지적했다.

어렵사리 재판이 열린다 해도 대부분 경미한 처벌에 그친다. 초범은 벌금 100만원 남짓이다. 민사 소송을 해도 위자료는 3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피해자는 번거로운 재판 대신 가해자와 합의하거나 고소포기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신촌의 한 대학에 다니는 최모씨(25) 사례가 잘 보여준다. 최씨는 올 3월 전 남자친구를 포함한 같은 과 남학생 열댓 명이 모인 메신저 채팅방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충격을 받아 민사소송을 준비했지만 300만원에 이르는 변호사 선임비가 벅차 포기하고 말았다.

페이스북·텀블러 등 해외 SNS에서의 범죄는 처벌이 훨씬 어렵다. 고교 2학년 정모양(18)은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자신의 과거 사진이 걸리고 성적 모욕과 외모 비하 등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것을 최근 발견했다. 7만 명이 가입한 그 페이스북 상단에는 ‘고소는 너의 몫’이라는 글이 버젓이 걸려 있었다. 놀란 마음으로 경찰서를 찾았지만 “해외 사이트는 경찰에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피의자의 개인정보를 직접 찾아와야 고소가 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사이버 모욕도 형법으로 처리해야”

일선 수사기관이나 관련기관도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사건 처리로 골머리를 앓는다. 익명 게시판에 악성 글을 올리거나 해외 IP로 접속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경찰이 가해자를 추적할 방법은 없다.

소송 전 합의를 유도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분쟁조정 제도도 실효성은 낮다. 엄기순 방심위 분쟁조정팀 차장은 “조정을 신청하려면 가해자의 이메일이나 집 주소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신청 후 60일 이내에 가해자가 출석에 응하지 않으면 신청서는 각하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신청된 분쟁조정 1684건 가운데 661건은 이런 이유로 기각·각하됐다.

결국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진응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기존의 정보통신망법이 아니라 형법에 편입해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는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학교나 기업 등 조직에 책임을 묻는 방식도 범죄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현진/양길성/장현주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