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의 이슈프리즘] 수출 대국의 숨은 주역들
우리나라가 수출 제일주의 전략을 본격 추진한 것은 1964년이다. 수입대체정책의 한계를 절감한 박정희 정부는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고정환율을 확 올려 근로자의 임금 경쟁력부터 높였다. 그해 5월 정부는 원·달러 환율을 달러당 130원에서 255원으로 두 배 가까이 인상했다. 한국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0센트로 떨어져 대만(약 19센트) 등과 경쟁할 수 있게 됐다. 그해 6월부터는 매월 대통령이 각 부 장관과 민간기업 협회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수출진흥위원회를 주재하고 수출을 독려했다.

당시 임금 경쟁력은 확보했지만 일천한 산업기반으로 해외에 내다팔 물건이 마땅치 않았다. 쓸 만하거나 먹을 만한 것은 우리가 쓰거나 먹지 않고 수출부터 했다. 처녀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로 만들어 미국에 팔았고, 아낙네들은 굴과 전복을 따와 일본으로 내보냈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그해 11월30일 수출액 1억달러를 달성했고, 그 기쁨을 수출의 날 제정으로 대신했다.

가발로 시작한 수출 세계 6위

그로부터 53년 뒤인 올해, 한국은 수출액이 사상최대인 6000억달러에 육박하며 세계 6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중국 미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여섯 번째로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된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중개무역 비중이 큰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세계 5위다. 주요 7개국(G7) 국가인 프랑스(8위) 이탈리아(9위) 영국(10위) 등은 우리 뒤에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돼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이 반세기 만에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세계 경제사에 ‘기적’이라고 쓰여질 만하다.

우리 수출은 양적으로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비약적 발전을 했다. 1960년대 주력 수출품은 수산물 가발 섬유 합판이었다. 지금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석유화학 제품 등이 대표 수출상품이다.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지도 한 장을 들고 해외 은행과 선주들을 설득해 조선소를 지은 정주영, 모두가 시기상조라며 말리던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이병철의 도전과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해 무역의 날 산업훈장을 받은 기업인들이야말로 수출 한국의 숨은 주역들이다. 1966년 회사를 창업하고 오직 초경합금 절삭공구에 온몸을 던져 지금은 8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한국야금공업의 김경배 회장, 직원 다섯 명으로 시작해 남다른 화장품 개발로 중국 등 17개국 시장을 개척한 유알지의 전희형 대표, 지난 30년간 의류와 섬유에서만 한 우물을 파 2조원 규모의 수출기업을 일군 세아상역의 하정수 대표 등의 몸속엔 수출전사(戰士)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수출은 지금도 '경제 생명줄'

한국은 소규모 개방 경제(small open economy)라고 한다. 내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인구가 5000만 명을 갓 넘는 좁은 국내 시장만으론 경제성장에 한계가 많다. 우린 결국 물건이든 서비스든 외국에 내다 팔아야 살 수 있다. 올해도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70% 이상을 수출이 기여했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수출이 창출한 일자리만 33만 개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수출 환경은 날로 험해지고 있다.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과 미국의 보호무역 장벽은 높아지고, 경쟁국들의 견제도 거세다. 이럴 때일수록 수출 기업인들의 뚝심 있는 돌파력이 절실하다. 정부의 뒷받침은 물론 국민들의 응원과 박수도 필요하다. 수출이야말로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경제의 변함없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