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1일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법 집행 가이드라인’을 2년 만에 다시 바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404만 주를 추가 매각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삼성그룹은 공식 대응을 자제했다. 삼성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예규로 최종 확정돼 통보가 오면 내부에서 논의한 뒤 대응 방안을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공정위가 해석의 다툼이 있는 법 조항의 유권해석을 불과 2년 만에 뒤집은 것에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이번 조치가 내년 초로 예정된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이 부회장의 1심 판결문에는 ‘순환출자 해소와 관련한 삼성의 청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이 전혀 없는데도 공정위가 이를 공식 문서에 기재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내부적으로는 “공정위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 관계자는 “2년 전 나온 가이드라인도 공정위가 수개월 동안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의를 거쳐 내린 결론”이라며 “상황의 변화가 없는데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부가 스스로 정한 원칙과 기준을 바꾸면 기업 경영 활동을 둘러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법률 조항에 대한 기업들의 유권해석 요청에 공무원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매각은 기관투자가에게 나눠 파는 블록세일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이 39%에 달해 외부에 주식을 팔더라도 경영권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처분 주식 수도 404만 주(2.1%)로 많지 않다.

2015년 삼성물산 주식 500만 주를 매각할 당시엔 이 부회장(130만 주)과 삼성생명공익재단(200만 주) 등 삼성 측 특수관계인이 총 330만 주를 매입했다. 나머지 170만 주는 국내외 투자자에게 블록세일로 매각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