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9월 홍콩 펄램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전광영 화백이 경기 성남 판교의 스튜디오에서 현대인의 고뇌를 담아낸 자신의 대형 설치작품 ‘집합’ 앞에 서 있다. 한경DB
내년 9월 홍콩 펄램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전광영 화백이 경기 성남 판교의 스튜디오에서 현대인의 고뇌를 담아낸 자신의 대형 설치작품 ‘집합’ 앞에 서 있다. 한경DB
1년 이상 꽁꽁 얼었던 한국과 중국 미술계 간 교류가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지난해 자취를 감췄던 중국 작가들의 한국 전시, 한국 작가들의 중국 전시가 재개될 움직임이다.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와 화랑의 중국 시장 진출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함께 글로벌 아트마켓 ‘빅2’로 부상한 중국을 국내 미술계가 ‘미술 한류’의 전초기지로 삼을 수 있을지 다시 이목을 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이 사라지는 듯하다가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속단은 금물이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한한령 후폭풍으로 꼬박 1년 이상 중국에서 한국 작가 개인전을 열 수 없었다”며 “사드가 아니라 다른 외교 분쟁이 생길 경우에도 이번과 같은 한한령이 다시 가해질 수 있다”며 경계했다. 한·중 미술계 교류와 시장 진출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급성장하는 중국 미술시장

중국 미술품 경매시장은 2006년만 해도 세계 시장 점유율이 채 5%가 되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홍콩, 상하이, 베이징을 중심으로 급성장하며 시장 규모가 연 8조~10조원대로 불어났다. 지금 세계 시장 점유율은 30%대에 이른다.

작년 한국의 미술품 경매 낙찰총액은 1720억원이었다. 같은 해 국제 경매시장에서 중국 근대화가 장다첸(張大千·1899~1983)의 낙찰총액만 3973억원이었다. 중국 작가 한 사람의 경매액이 한국 전체 경매액보다 2.5배 크다는 얘기다. 지난 17일 베이징 폴리경매에서는 중국의 20세기 최고 미술가로 꼽히는 치바이스의 작품 ‘산수12조병(山水十二條屛)’이 9억3150만위안(약 1532억원)에 팔리며 중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국내 미술계가 중국 시장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서울옥션 홍콩 전시장 준비

홍콩에 현지법인 사무실만 뒀던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은 내년 3~4월 홍콩 중심가 센트럴에 330㎡(약 100평) 규모의 상설전시장과 경매장을 겸한 공간을 조성해 한국 미술을 소개할 계획이다. 이옥경 대표는 “지난 10년간 홍콩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적응하는 데 주력했다면 내년 상설전시장 개관은 중국 시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두드려보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지난 7월 상하이 웨스트번드 구역에 1000㎡(약 300평) 규모의 화랑을 열었다. 상하이를 교두보로 삼아 아시아 미술시장을 주도해보겠다는 포석이다. 주연화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점 디렉터는 “상하이 전시공간은 한국과 중국 전속작가 38명의 작품 발표 무대가 될 것”이라며 “내년 5월로 예정된 최병소 작가 개인전 개최를 위한 면허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작가들의 중국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채집한 야생화를 반추상기법으로 작업한 정우범 화백은 내년 5월 베이징 798지구 피닉스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중국 최대 미술재료 생산 및 유통기업인 펑황그룹이 모든 전시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정 화백은 최근 펑황그룹과 자신의 작품(‘환타지아’ 시리즈) 20점에 대한 이미지 사용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지조각가 전광영 화백은 내년 9월 홍콩펄램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과 한국조각협회는 새해 베이징 전시회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중국 작가 유치전도 치열

국내외 화랑의 중국 작가 유치전도 치열하다. 미국 메이저 화랑인 페이스의 서울점은 중국 전속작가 송둥을 ‘등판’시켰다. 리버풀비엔날레(2010)와 베니스비엔날레(2011)에 참가한 송둥의 개인전을 통해 한국에 중국 현대미술을 알린다는 전략이다. 아라리오는 중국의 젊은 작가 쑨쉰(37)을 초대한 데 이어 중국 30대 작가 가오레이를 선발해 개인전을 열고 있다. 갤러리 고월헌은 중국 화가 시에판의 초대전을 개최 중이다.

학고재갤러리도 중국 작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학고재가 내년 전시 일정에 마류밍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흥행몰이’에 이목이 쏠린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