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고 남은 '반쪽' 태조 어진(御眞), 디지털 기술로 부활
2015년 국립고궁박물관이 개최한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 특별전에 빨간 곤룡포를 입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사진·모사도)이 등장하자 문화재 관계자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국보 제317호(역시 모사도)로 지정된 태조 어진은 청색 곤룡포를 입은 모습인데, 이 어진의 곤룡포는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1954년 화재로 오른쪽 눈과 귀만 남기고 얼굴 대부분이 사라진 어진이었다. 이 그림은 현대에 제작된 모사도이지만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불에 타 상당 부분 유실된 태조의 어진을 어떤 과정을 거쳐 복원했는지를 기록한 ‘태조 어진 보존 처리 및 모사도 제작’ 도록을 24일 출간했다.

조선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진을 만들어 봉안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어진은 20여 점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어진(왕)은 태조, 영조, 철종, 고종, 순종과 인조의 부친인 원종까지 6명뿐이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시조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의 어진은 특히 많이 제작됐다. 1398년 함경도 영흥과 경상도 경주에 태조 어진이 봉안된 뒤 전주, 평양, 개성, 한양 등에 모사도 어진을 모시는 진전이 세워졌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불에 탄 어진이 북한 영흥 준원전의 태조 어진을 본보기로 1900년 모사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준원전 어진 실물은 없지만 다행히 1913년께 촬영된 흑백 유리원판 사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었다. 흑백사진에 있는 태조의 용안은 국보로 지정된 어진(1872년 모사도)과 달랐다. 국보 어진은 태조의 노년 시절 모습을 묘사해 수염이 흰색이지만, 준원전본에선 수염이 검은색이고 광대뼈가 더욱 두드러졌다.

준원전본 사진을 확보한 고궁박물관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훼손된 태조 어진을 데칼코마니 방식으로 복원했다. 현존 어진의 오른쪽 얼굴을 바탕으로 왼쪽 얼굴을 똑같이 만든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모사도는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다는 원칙에 따라 제작됐다”며 “모사도와는 별도로 훼손된 태조 어진은 2012년 보존 처리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