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 팔지 못하는 구멍가게의 추억
답 없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 동네에서 20년을 살고 있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슈퍼가 10개 정도는 됐던 것 같습니다. 가게 안을 걸어 다니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물건을 잔뜩 쌓아놓은 작은 가게도 있었고, 마트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큰 슈퍼도 있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그 슈퍼와 가게가 하나씩 없어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모두 편의점이 들어섰습니다.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 슈퍼는 딱 두 개. 하나는 워낙 큰 슈퍼라 손님도 많습니다. 동네 슈퍼보다 구멍가게라는 말이 어울리는 슈퍼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들어가면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나고, 상품은 어지럽게 대충 진열돼 있습니다. 주인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얼마 전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와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딸아이가 말했습니다. “어렸을 때 저 집 참 많이 다녔는데. 근데 저 집 유통기한은 지키면서 팔까. 편의점 때문에 장사도 안될 텐데. 저기 할머니하고 할아버지 개불쌍해. 저 집은 외상도 됐는데.”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아이의 말에 담겨 있는 메시지 때문입니다. 물론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막 던졌겠지만.

우선 경쟁력에 대한 얘기입니다. “유통기한을 지키며 팔까?”라는 의문은 동네 슈퍼의 경쟁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연구개발을 통해 매일 새로운 것을 개발해 진열대를 바꿔놓는 편의점. 이들과의 경쟁은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동네 가게가 사라져 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일까. 아이는 안타까워하는 듯했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겠지요. 하나는 아빠 손을 잡고 겨우 걸을 때부터 다녔던 그곳에 대한 추억입니다. 아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이 가게를 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경쟁에 밀려 손님이 없어지고 있는 안타까움. 딸아이는 또래 용어로 ‘개불쌍’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마지막으로 “외상도 됐는데”라는 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습니다. 과거 동네 구멍가게는 다양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인사 잘한다고 그냥도 줬습니다. 외상은 물론. 아이가 길을 잃으면 엄마를 찾아주기도 하고, 동네 정보가 교환되는 공간의 역할도 했습니다. 편의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그 마지막 가게도 언젠가는 문을 닫을 것입니다. 편의점으로 바뀌겠지요. 편의점 세상입니다. 안 파는 게 없는 그런 곳. 하지만 편의점이 팔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추억과 그리움 뭐 그런 것들.

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