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서울역광장에 모여있던 노숙인들이 지하철역사 쪽으로 자리를 옮겨 비를 피하고 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서울역광장에 모여있던 노숙인들이 지하철역사 쪽으로 자리를 옮겨 비를 피하고 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아버지와 함께 서울 용산에 사는 손명수 씨(가명·27)는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에도 서울역광장에서 홀로 소주 네 병을 비웠다. 손씨는 대입에 실패한 뒤 가출한 스무 살 때 처음 이곳을 찾았다. 이후 8년째 매주 2~3일을 출퇴근하듯 서울역광장으로 와 노숙인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다 오후 9시가 넘으면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역광장에서는 손씨 같은 이들을 ‘반노(반절의 노숙자)’라고 부른다. 거주지가 일정하고 가족도 있지만 부랑자 틈에 껴 반(半) 노숙인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집도 가족도 있는데…

노숙인은 세밑이 오면 더 늘어난다. 한 교회 관계자는 “1년 중 노숙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날이 12월29일”이라며 “연말이면 각종 행사를 구경하거나 선물을 받으려는 노숙인들로 서울역광장이 붐빈다”고 전했다.

반노의 사연은 다양하다. 최근에는 손씨처럼 사회 부적응자 20~30대 반노가 부쩍 눈에 띈다. 청년 실업 등으로 사회 정착을 어려워하는 20~30대가 노숙인 무리에 끼어드는 사례다. 전국적으로 노숙인지원시설에 등록된 20~39세 청년노숙인은 모두 717명으로, 전체 노숙인(9325명) 의 7.7% 수준이다.

사회부적응뿐만 아니라 가정부적응도 주요 요인이다. 60대 김모씨는 “경제력이 충분한데도 아내와 한집에서 살기 싫어 일부러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50대 남성 박모씨는 “사이 나쁜 가족이 보기 싫어 노숙인들과 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사 간부로 퇴직했다는 한 노숙인은 사업에 실패해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노숙인 전담 경찰관은 그에 대해 “딸이 이태원에 집을 마련해 주고 후배 기자들이 돈을 걷어 도왔지만 계속 노숙 생활 중”이라고 전했다.

반노 생활 중 객사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지난 22일에는 가출해 노숙 생활을 전전하던 40대 남성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유족들은 “가출로 연락이 끊어졌다가 병을 얻어 15년 만에 귀가했지만, 건강 회복 후 ‘자유로운 생활이 좋다’며 다시 가출하더니 결국 사고를 당했다”고 침통해했다.

◆복지 ‘이중 수급’도 문제

행정부처 입장에서 보면 반노는 단순한 노숙인보다 훨씬 더 골칫거리다. 복지서비스를 중복해서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노 대부분이 신체·정신적 문제로 돈벌이가 어려워 이미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있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본래 정책 대상에서 벗어나 잘못 배분된다는 비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 생계 지원을 받는 사람까지 노숙자 지원 사업 대상에 끼어들고 있다”며 “노숙인과 비노숙인을 구분하다간 노숙인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크리스마스나 연말이 다가오면 종교단체나 민간봉사단체는 노숙인과 비노숙인 구분 없이 음식과 선물 등을 나눠준다. 간혹 현금을 돌리기도 한다. 이럴 경우 경제력이 없는 노숙인에게 전해져야 할 민간 지원이 반노에게로 새는 결과가 초래된다.

민간 노숙인지원시설인 옹달샘드롭인센터의 임성준 거리상담팀장은 “거주지나 가족을 확인할 수 없어도 추운 겨울엔 노숙인이든 비노숙인이든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이들이 상담에서 얘기한 내용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의 노숙인 수는 3241명이다.

이현진/민경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