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은 3개월여 동안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다. 1심에 등장하지 않았던 증인에 대한 신문도 없었다. 한 주에 최대 네 차례씩, 때로는 새벽 2시를 넘겨 진행된 1심 공판과 달리 2심 공판은 매주 한 차례씩 열렸다. 증언을 둘러싼 사실 관계보다는 1심에 적용된 법리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는 공방이 이어졌다. 법조계에선 “이번 재판도 문재인 정부의 전방위 적폐 청산 기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과 “무리한 특검 수사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항소심 재판의 승부를 가를 핵심 쟁점을 정리했다.
이재용 항소심 27일 결심공판… 3대 쟁점은
(1) 명시적 청탁 없이 묵시적 청탁?

1심 재판부는 △뇌물공여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 혐의 등 박영수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해 기소한 다섯 가지 범죄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또는 일부 유죄)라고 판단하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이 같은 혐의들에 대해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모두 무죄를 주장하는 반면 특검은 형량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경영진이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나 이를 구성하는 개별적 현안에 대해 명시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피고인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적극적 요구에 의해 수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요구에 의해 승계 작업과 관련한 묵시적 부정 청탁을 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 부회장 측은 항소심에서 개별 현안에 대한 명시적 청탁 없이 묵시적 청탁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승마 지원이나 재단 출연 요구가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와주는 것에 대한 대가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으로부터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검찰이 뇌물을 건넸다는 이 부회장이 뇌물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증거로 입증해야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런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특검 측은 항소심에서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은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등 개별 현안에 대한 대통령 단독면담 말씀자료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 등에서 부정 청탁의 근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2) 포괄적 경영권 승계는 허구?

이 부회장 측은 1심 유죄 판결의 논리적 토대를 제공한 ‘포괄적인 경영권 승계 논의’는 특검 측이 만든 ‘가공의 틀’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이뤄진 시점에선 이 부회장이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사실상 경영권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굳이 정부에 부정 청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 측은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두 차례나 진행됐지만 당시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추진했다는 내부 보고서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검도 1차 영장 청구 때 생각지 못한 ‘포괄적 경영권 승계’ 논리를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어떻게 인식했다고 할 수 있느냐”(이인재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논리다.

이에 대해 특검은 이 부회장의 개인 자금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작업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의 핵심 현안이라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지 않거나 정부부처나 국회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대가로 금품을 건넨 유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3) 말 실소유주 논란

삼성 측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최순실 씨와 그의 딸 정유라 씨에게 건넸다는 마필의 실소유주 논란도 항소심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핵심 피고인인 최씨가 1심과 달리 항소심에 직접 나와 검찰 측 논리를 거세게 반박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 측이 최씨에게 말을 사준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재용이 대통령을 만나 말을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느냐”(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엄마가 말을 네 것처럼 타면 된다고 말했다”(정씨) 등의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는 항소심 재판정에 출석해 “말 계약서는 (엄격한) 독일법에 따라 체결됐고 말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독일 세무서에 소득원천을 증명해야 한다”며 “(삼성이 우리에게) 말 소유권을 넘겼다는 것은 검찰이 넘겨짚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씨가 말 구입비용에 대한 소득 원천을 증명하지 못해 말 소유권을 가질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정씨 발언에 대해서도 “당시엔 편하게 타라는 취지로 말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씨는 말의 실소유주인 삼성 측 동의 없이 마필 교환 계약을 체결한 이유에 대해서도 “좋은 말이 시장에 급하게 나와 삼성에 물어볼 시간도 없이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좌동욱/고윤상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