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거꾸로 가는 한국 법인세 정책, 시급히 되돌려야
미국이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법인세율을 낮춘다. 법인세율 인하 등을 담은 세제개편안 최종 수정안이 지난 19일 하원을 통과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법안에 서명했다. 법안은 내년부터 효력을 발휘해 현행 35%인 법인세 최고세율이 21% 수준으로 낮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15%에는 못 미쳤지만 세계 각국을 긴장시키기에는 충분한 파격적 인하다.

세제개편안은 법인세 인하뿐 아니라 기업의 해외 잉여금에 대한 세율도 내린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시장적 세제 개편으로 미국 기업은 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해외에 쌓아둔 막대한 자금을 국내로 들여올 수 있고 매력적인 기업을 인수합병(M&A)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제조업의 실적 개선과 리쇼어링(해외 생산시설의 국내 이전)이 촉진되면서 경제 동력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유럽과 아시아에선 미국의 법인세 인하가 자국의 경쟁력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부는 투자 유치와 고용 창출을 위해 자국의 법인세율을 낮추는 경쟁에 나섰다. 일본은 당장 내년까지 실질 법인세율 부담을 최대 20%까지 낮추겠다고 공표했다. 법인세율이 16.5%로 낮은 편인 홍콩도 일정 규모 이하 법인에 대해 법인세율을 8.25%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금융위기 이후 법인세를 낮춘 여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도 추가 인하 여부를 저울질하는 모양새다.

이런 글로벌 법인세율 인하 도미노 현상과 달리 한국은 ‘나홀로 법인세율 인상’을 밀어붙여 2018년도 세법에 반영했다. 내년부터 과세 표준 3000억원 초과 구간이 신설돼 기존 22%보다 3%포인트 높은 25%의 명목 최고세율을 적용한다. 정부에서는 77개 초대기업만 해당하는 핀셋 증세인 만큼 대다수 기업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표적 증세는 법인세의 본질을 외면한 대중인기영합적인 행태다. 법인세는 기업주가 부담하는 인세(人稅)가 아니라 수많은 근로자가 주축인 기업(법인)이 부담하는 세금이다. 늘어난 법인세는 근로자와 주주, 소비자에게 전가돼 결국 국민에게 부담으로 돌아간다.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한국 법인세제의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 선진국은 단일하거나 단순한 형태의 법인세 누진 구조로 돼 있다. OECD 35개국 중 26개국이 조세 형평성을 이유로 이윤 크기와 관계없는 단일 세율 체계다. 미국도 외형상 복잡해 보이지만 대부분 기업이 단일 세율에 가까운 법인세율을 적용받는다. 한국은 내년부터 포르투갈 등을 제외하면 세계 유일의 4단계 누진 구조를 도입하게 된다. 누진 과세 역시 주주와 근로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피해가 간다.

이번 법인세율 인상과 누진 구간 확대는 나라 경제를 멍들게 하는 매우 잘못된 정치적 오판이다. 특히 수출 비중이 매우 높은 한국은 미국 등 주요 거래 대상국에서의 경쟁적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크게 우려된다. 이른 시기에 법인세율을 OECD 평균 수준 이하로 낮추고 누진 구간도 선진국과 같이 2단계 정도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부서진 외양간을 빨리 고칠수록 잃어버릴 소(牛)의 수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종인 <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