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하는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가 행정처 컴퓨터 4대의 저장매체를 강제 개봉해 조사중이다.

추가조사위는 26일 오후 5시께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며 “조사 대상은 공용컴퓨터에 저장된 사법행정과 관련해 작성된 문서”라고 밝혔다. 4대의 저장매체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전·현직 기획조정실 소속 심의관 2명이 사용한 컴퓨터 속 하드디스크들이다. 추가조사위는 15일 구성된 후 하드디스크들을 확보해 보존 조치했다. 이후 당사자 동의없는 조사가 불법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법원 내부를 포함해 광범위하게 제기되자 조사를 미뤄왔다.

하지만 추가조사위는 끝내 동의를 받지 못한 채 강제 조사를 결정했다. 추가조사위는 “관련 당사자들의 동의와 참여 하에 조사를 진행하고자 위원회 구성 시부터 최근까지 수차례의 서면 및 대면방식으로 동의를 구해 왔지만 결국 동의를 얻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사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추가조사위는 “저장매체에 있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문서와 비밀 침해의 가능성이 가장 큰 이메일은 조사범위에서 제외됐다”며 “저장매체에 있거나 복구된 모든 문서를 열람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의 생성·저장된 시기를 한정하고 현안과 관련된 키워드로 문서를 검색한 후 해당 문서만을 열람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사 대상과 방법을 한정하고 당사자에게 참여와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한다면 조사로 관련 당사자들의 사적 정보(비밀)가 침해될 개연성이 거의 없고 이러한 문서의 열람 등에 당사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자의적 판단을 내렸다.

추가조사위는 법원행정처의 지원을 받아 조사 장소 근처의 보안유지를 강화했다고도 설명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 같은 조사 방식에 동의했고, 지원해줬다는 이야기다.

앞서 법원 내부망에는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위법 소지가 있다’는 반박글을 올렸고, 이숙연 부산고법 판사도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걸 당사자 동의도 없이 강제 개봉하는게 법관들이 할 일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두고 두고 문제가 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