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우리 곁의 '진정한 영웅들'
뉴욕에서는 매년 9월11일 특별한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34㎏ 무게의 배낭을 메고 5㎞ 구간을 달리는 행사다. 출발 장소는 배터리터널 입구, 골인 지점은 ‘그라운드 제로(9·11테러로 사라진 월드트레이드타워 터)’다. 2001년 ‘9·11’ 당시 순직한 스티븐 실러 소방관을 추모하는 행사다.

사고 당일 비번(非番)이었던 그는 아침 식탁에서 테러 뉴스를 접하자마자 75파운드(약 34㎏)짜리 장비를 챙겼다.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고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가 살던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잇는 배터리터널이 사고로 인해 통제되자, 장비를 둘러메고 현장까지 5㎞ 거리를 내달렸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사고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343명의 소방관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스티븐 실러’가 미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요즘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동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다. 성탄절이었던 지난 25일, 경기 수원시에서 발생한 오피스텔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 모습이다. 쉬는 날 비상 소집된 대원들은 소방차가 아닌 개인 승용차에서 소방복과 진압 장비를 꺼내 입었다.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가다가 전화를 받고 곧바로 차를 돌렸다. 불이 언제 날지 모르는데 소방관에게 따로 쉬는 날이 있겠는가.” 소방관의 말은 실러와 영락없이 닮은꼴이다. 동영상에는 ‘진정한 영웅들’ ‘소방관들 덕에 평온한 휴일을 보냈다. 정말 감사하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날 수원 소방대원들은 무사했지만, 적지 않은 소방관들이 재난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고 있다. 가깝게는 지난달 인천 물류창고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대원이 순직했고, 9월에는 강릉에서 두 명의 소방관이 무너져 내린 지붕에 깔려 세상을 떠났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1세인데, 소방대원들의 평균수명은 59세라는 통계도 있다.

이렇게 한국에도 ‘스티븐 실러’들이 많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있다. 순직한 공직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돌보는 시스템이다. 미국에서는 어지간한 소방관 희생사고에 대해서는 고위 공직자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가장 중요한 업무순위에 올려놓는다. 미국의 신문과 방송에서 순직한 소방관 영결식장을 직접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는 대통령 모습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러 소방관을 추모하는 9·11 특별 마라톤대회에는 매년 정치인 공무원 군인 등을 비롯해 수천 명이 참여해 ‘공직자 정신’을 새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는 아예 1학년 생도 커리큘럼에 ‘9·11 마라톤 참가’를 포함시키고 있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참사를 놓고 소방당국의 미흡한 대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에서는 늦은 대응을 지적하며 “세금이 아깝다”는 등의 원색적인 비판까지 쏟아냈다. 소방당국과 대원들에게 아쉬웠던 대목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소방차의 신속한 출동을 막는 불법 주정차와 소방관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노후 장비 문제가 그렇다. 사고가 터졌을 때만 잠시 거론될 뿐, 이내 망각 속에 묻혀버린다.

무엇보다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헌신과 진정성에 눈감고, “어디 실수하기만 해봐라”는 식으로 팔짱을 낀 채 노려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적폐청산’이 시대정신의 상징어처럼 된 이후 우리 사회가 더 팍팍하고 살벌해져 가고 있는 건 아닌지도 걱정스럽다.

세상 살아가면서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가다보면 언제 어떤 장애물을 만날지 가슴 졸여야 하는 게 세상사다. 곤경을 만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경쟁 환경에서 사투를 벌이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영웅들을 알아봐주고, 고마워하고, 박수를 보내는 사회적 여유와 성숙함이 아쉽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