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후진적 건축물 참사, 더 이상 안된다
지난 성탄절 연휴, 국민들은 황망하고 참담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로 희생된 29명의 장례식이 연휴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도 어김없이 ‘불법·부실·안전불감·무능대책’으로 뒤범벅된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멘붕’에 빠졌다. 아파트 사무실 상가 호텔 리조트 등 우리 주변의 건축물 안전시설은 제대로 갖춰졌고, 잘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65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사고는 ‘후진국형 건축물 안전사고의 완결판’이다. 안전설비 불법·부실 설치, 안전사고 무능 대응, 국민들의 일상화된 안전불감증 등 ‘안전불감 3종세트’가 완벽하게 얽혀서 빚어진 참사란 게 현재까지 조사 결과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소방 및 기타 안전설비의 설치부터 관리까지 불법·비리투성이였다. 스프링클러 밸브 무작동, 각층 피난기구인 완강기 위법 설치(8개 층에 2곳만 설치), 외장재 드라이비트 방염 처리 무시, 무허가 증축·용도변경 등 상식 밖의 위법 행위가 속속 드러났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다중 이용시설(문화집회·운동시설)’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안전시설들은 과감히 생략된 채 관리·운영됐다.

불법·부실 방치되는 건물 안전

최근 발생한 경주·포항 지진 이후 국민들은 국내 건축물이 천재지변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올해 말까지 모든 주택과 연면적 200㎡ 이상 건물에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내년 상반기부터는 모든 신축 주택의 내진 성능을 건축물대장에 공개키로 했다. 건축물 내진 강화 소동 이후 발생한 이번 화재 사고는 정부와 국민들에게 또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전국 건축물과 공공시설의 안전설비가 불법·부실·불감 등 ‘공포의 3불 세트’로 관리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건물과 도시의 안전체계, 이대로는 안 된다. 전천후 안전관리 시스템(설치·관리운영·사고대응) 구축을 통한 선진화가 시급하다. 전국적·전방위적으로 고착화된 불안전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정부, 국회, 국민들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힘든 과제다.

정부는 신속하게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건축물과 도시 전반의 안전설비 구축·관리·운영까지의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안전사고 발생 이후 정부·지방자치단체, 해당 기관 등의 대응 능력 향상과 장비·인력 확대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전방위 안전체계' 구축 시급

국회도 당장 관련 법의 제·개정을 챙겨야 한다. 참사 현장에서 황당하고 저급한 책임 논쟁을 벌일 게 아니다. 이미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 개정안부터 꼼꼼히 검토하는 한편 전문가 도움을 받아 관련 법 보완에 발벗고 나서는 게 순서다.

국민들의 안전의식 개선과 안전시설 점검 생활화도 필수다. 이를 위해 부동산 거래 과정(매매·임대 거래)에 ‘건축물 안전시설 체크 의무화 방안’을 도입해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매도자와 매수자, 임대자와 임차자 등이 해당 건물 거래를 할 때 안전설비 관리 상태 등을 상호 체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국민들의 안전의식 개선 효과는 물론 부동산시장에서 가격 형성 방식에도 긍정적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 건물 안전 수준이 집값과 건물 가격 형성에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전국에서 무시로 발생하는 후진적 건축물 안전사고, 이쯤에서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정치권·국민들이 작심하고 나선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박영신 한경부동산연구소장 겸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