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헌 70년] 김원기 전 국회의장 "5대 권력기관 칼자루 쥔 제왕적 대통령제… 우리 정치의 최대 병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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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회를 타협 아닌 '대선 투쟁'의 장 변질시켜
DJ 면전서 대통령제 개혁 제기 오해 사기도
권한 안 줄인 4년 중임제, 단임제보다 폐해 커
몇달 늦추더라도 여야합의 개헌안 통과시켜야
국회를 타협 아닌 '대선 투쟁'의 장 변질시켜
DJ 면전서 대통령제 개혁 제기 오해 사기도
권한 안 줄인 4년 중임제, 단임제보다 폐해 커
몇달 늦추더라도 여야합의 개헌안 통과시켜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병폐’라고 주장해 발칵 뒤집혔어요. 여당 최고위원이 당 총재인 대통령을 치받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사진)은 우리 정치권에서 대통령제의 폐해를 가장 먼저 제기한 의회주의자로 꼽힌다. 첫 여야 정권교체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 4년차이던 2001년 3월 당시 김 대통령 면전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혁을 주장해 파란을 일으켰다. 김 전 의장은 28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 정치를 시작해 수십 년의 노력 끝에 정권교체를 이뤘는데도 정치인과 국회에 대한 여론은 군사정권 때와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고민하다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를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전 의장은 “지금처럼 대통령이 절대적 권한을 갖는 제도에서는 국회가 대화와 타협보다 다음 대선을 위한 투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며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끝이 좋은 대통령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대통령에게 결과적으로 해악이 된 비대한 권력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 초반인 17대 국회 전반기(2004~2006년) 수장을 지낸 김 전 의장은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공동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당 시절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했습니다.
“여당은 대통령 거수기 노릇을 하고, 야당은 카리스마적인 대표나 총재가 찬반을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구조였어요. 그런 국회의원들이 무슨 법안 연구를 했겠습니까. 여야가 바뀌고 나름 개혁 정책을 시행했어도 이런 국회 내 구조는 바뀌지 않았어요. 국민이 이런 실상을 알면 국회의원들이 욕먹을 자격조차 없을 것이라고 한탄하고는 했습니다. 지금 국회가 그때보다 투명해지고 나아졌지만 국회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근본 원인인가요.
“미국의 대통령제를 본떴지만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보다 권한이 훨씬 막강합니다.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등 5대 사정기관을 비롯해 권력의 칼자루를 모두 대통령이 쥐고 있어요. 여기에 미국 대통령에게는 없는 법안 제출과 예산 발의 권한도 갖고 있어요.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 가운데 우리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여야 정치권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으려 하고 국회가 결투장 역할을 하는데 무슨 정치가 가능하겠습니까.”
▷대통령제 실패가 사람이 아니라 구조 문제라고 봅니까.
“1987년 개헌 이후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예외없이 소멸됐습니다. 대통령 모두 임기 말에는 야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속당의 요구로 당에서 떠나야만 했습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의 폐해를 극복해야 합니다.”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분산해야 합니까.
“우리 국민 정서상 순수 의원내각제는 어림도 없습니다. ‘염치없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이 뽑던 대통령을 자기들이 뽑으려고 한다’고 얘기하면 내각제 안은 통과조차 안 될 겁니다. 내치와 외치를 나누는 이원집정부제나 4년 중임제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이라면 고려해볼 만합니다. 지금과 같은 권한을 갖는 4년 중임은 5년 단임보다 더 폐해가 클 수 있습니다. 사정기관 수장의 임기를 법률로 보장하거나 외부 위원들이 뽑도록 해서 대통령이 맘대로 칼자루를 못 휘두르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처럼 예산 편성권과 법률안 제출권도 국회가 갖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국회 개헌 논의가 개헌특위 연장 문제로 중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개헌안을 처리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2월까지 합의안을 만들어 재적 3분의 2(200명) 이상 의원이 찬성해야 하는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정치적 이해 때문에 동시 처리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와 동시 처리하는 게 무리라면 국민투표 시기를 몇 달 늦추거나 단계적 개헌을 해서라도 여야가 올해 안에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번이 개헌 적기라고 보는지요.
“개헌을 하려면 여야와 대통령이 모두 동의해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개헌에 부정적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선거 동시 개헌을 약속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기 초반이 지나면 다른 국정과제 때문에 개헌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국회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면 정부안 발의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그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여론 조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지는 모르지만 3분의 2에 달하는 국회 찬성을 얻어내기 어렵습니다. 개헌은 대통령이나 국회나 어느 한쪽이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국회를 제쳐놓고 대통령이 앞장서도 안 되고 국회도 대통령 동의 없이는 개헌할 수 없습니다.”
▷새해가 제헌 70주년입니다.
“제헌 헌법은 대한민국이 현재의 성취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100개가 넘는 신생 국가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제헌 헌법이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어떤 권력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제헌 헌법의 정신과 틀을 훼손하지는 못했습니다.”
■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1937년 전북 정읍 출생
△전주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김대중 총재 정치특보
△10·11·13·14·16·17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상임의장
△2004년 17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2015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김형호/김소현 기자 chsan@hankyung.com
김원기 전 국회의장(사진)은 우리 정치권에서 대통령제의 폐해를 가장 먼저 제기한 의회주의자로 꼽힌다. 첫 여야 정권교체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 4년차이던 2001년 3월 당시 김 대통령 면전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혁을 주장해 파란을 일으켰다. 김 전 의장은 28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 정치를 시작해 수십 년의 노력 끝에 정권교체를 이뤘는데도 정치인과 국회에 대한 여론은 군사정권 때와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고민하다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를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전 의장은 “지금처럼 대통령이 절대적 권한을 갖는 제도에서는 국회가 대화와 타협보다 다음 대선을 위한 투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며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끝이 좋은 대통령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대통령에게 결과적으로 해악이 된 비대한 권력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 초반인 17대 국회 전반기(2004~2006년) 수장을 지낸 김 전 의장은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공동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당 시절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했습니다.
“여당은 대통령 거수기 노릇을 하고, 야당은 카리스마적인 대표나 총재가 찬반을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구조였어요. 그런 국회의원들이 무슨 법안 연구를 했겠습니까. 여야가 바뀌고 나름 개혁 정책을 시행했어도 이런 국회 내 구조는 바뀌지 않았어요. 국민이 이런 실상을 알면 국회의원들이 욕먹을 자격조차 없을 것이라고 한탄하고는 했습니다. 지금 국회가 그때보다 투명해지고 나아졌지만 국회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근본 원인인가요.
“미국의 대통령제를 본떴지만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보다 권한이 훨씬 막강합니다.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국가정보원장 경찰청장 등 5대 사정기관을 비롯해 권력의 칼자루를 모두 대통령이 쥐고 있어요. 여기에 미국 대통령에게는 없는 법안 제출과 예산 발의 권한도 갖고 있어요.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 가운데 우리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여야 정치권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으려 하고 국회가 결투장 역할을 하는데 무슨 정치가 가능하겠습니까.”
▷대통령제 실패가 사람이 아니라 구조 문제라고 봅니까.
“1987년 개헌 이후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예외없이 소멸됐습니다. 대통령 모두 임기 말에는 야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속당의 요구로 당에서 떠나야만 했습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의 폐해를 극복해야 합니다.”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분산해야 합니까.
“우리 국민 정서상 순수 의원내각제는 어림도 없습니다. ‘염치없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이 뽑던 대통령을 자기들이 뽑으려고 한다’고 얘기하면 내각제 안은 통과조차 안 될 겁니다. 내치와 외치를 나누는 이원집정부제나 4년 중임제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이라면 고려해볼 만합니다. 지금과 같은 권한을 갖는 4년 중임은 5년 단임보다 더 폐해가 클 수 있습니다. 사정기관 수장의 임기를 법률로 보장하거나 외부 위원들이 뽑도록 해서 대통령이 맘대로 칼자루를 못 휘두르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처럼 예산 편성권과 법률안 제출권도 국회가 갖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국회 개헌 논의가 개헌특위 연장 문제로 중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개헌안을 처리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2월까지 합의안을 만들어 재적 3분의 2(200명) 이상 의원이 찬성해야 하는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정치적 이해 때문에 동시 처리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와 동시 처리하는 게 무리라면 국민투표 시기를 몇 달 늦추거나 단계적 개헌을 해서라도 여야가 올해 안에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번이 개헌 적기라고 보는지요.
“개헌을 하려면 여야와 대통령이 모두 동의해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개헌에 부정적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선거 동시 개헌을 약속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기 초반이 지나면 다른 국정과제 때문에 개헌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국회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면 정부안 발의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그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여론 조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지는 모르지만 3분의 2에 달하는 국회 찬성을 얻어내기 어렵습니다. 개헌은 대통령이나 국회나 어느 한쪽이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국회를 제쳐놓고 대통령이 앞장서도 안 되고 국회도 대통령 동의 없이는 개헌할 수 없습니다.”
▷새해가 제헌 70주년입니다.
“제헌 헌법은 대한민국이 현재의 성취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100개가 넘는 신생 국가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제헌 헌법이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어떤 권력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제헌 헌법의 정신과 틀을 훼손하지는 못했습니다.”
■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1937년 전북 정읍 출생
△전주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김대중 총재 정치특보
△10·11·13·14·16·17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상임의장
△2004년 17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2015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김형호/김소현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