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드뷔시와 '화요회' 시인·화가들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시조(始祖)인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 그의 곡들은 ‘오선지에 쓴 시’ ‘피아노로 그려낸 회화’라는 말을 듣는다. 그를 키운 예술적 자양분이 음악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문학과 미술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은 당시 프랑스의 새로운 예술 조류를 이끈 상징주의 시인과 인상주의 화가들이었다.

그 중심 무대에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 ‘화요회’가 있다. 시인 말라르메가 파리 시내의 자기 집에서 화요일 저녁마다 열었던 이 모임에는 시인 베를렌과 발레리, 화가 고갱·모네·마네 등이 자주 참석했다. 이들은 기존 문예사조에서 벗어나 예술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밤새워 토론하며 교감했다.

말라르메·베를렌·마네·모네…

‘언어’를 먹고사는 시인들은 낱말의 상징과 은유, 미묘한 뉘앙스의 맛에 끌렸다. ‘빛’을 중시하는 화가들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의 모습에 집중했다.

드뷔시는 이 상징주의 시와 인상주의 회화를 음악으로 가져왔다. 그의 출세작 ‘목신(牧神)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화요회’ 리더였던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그가 1892년부터 3년 동안 작곡한 이 관현악곡은 인상주의 음악의 문을 연 걸작이자 프랑스 근대음악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목신은 그리스 신화에서 판(Pan), 로마 신화에서 파우누스(Paunus)로 불린다. 반(半)은 사람이고 반은 염소의 모습이다. 그가 물의 요정에게 반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찾아 헤매는 과정을 묘사한 게 시의 내용이다. 말라르메가 이 시를 처음 쓴 시기는 1865년이었다. 시를 개작해 다시 시집으로 간행한 것이 11년 뒤였고, 시집에 삽화를 그린 인물은 ‘화요회’ 멤버인 마네였다.

드뷔시는 이 시를 관능적이고 몽환적인 선율로 그려냈다. “이 곡은 말라르메의 시를 극히 자유롭게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목신의 갖가지 욕망과 꿈이 그 속을 헤맨다. 요정은 겁을 먹고 달아나고, 목신은 깊은 잠에 빠져들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꿈에 취한다.”

'목신의 오후' '달빛' 명곡 탄생

시인 베를렌과의 인연은 그가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아홉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 음악을 가르친 사람이 베를렌의 장모였다.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드뷔시는 1년 뒤인 열 살 때 파리 국립음악원에 들어갔다. 드뷔시는 소년 시절부터 베를렌의 시를 작곡하고 싶어했다. 그의 감성을 깊숙하게 건드리면서 가장 개성적인 표현을 추구한 문장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달빛’은 발레리 시 ‘달빛’을 오선지에 옮긴 것이다. 28세 때부터 작곡에 들어간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세 번째에 나온다. 이 곡은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영화 ‘트와일라잇’과 ‘그린 파파야의 향기’ 등에도 등장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2018년은 드뷔시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그의 예술은 1세기가 지난 지금도 경외와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이 100주기 기념 앨범 ‘드뷔시’를 발매했다. 그 앨범에 ‘달빛’과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기쁨의 섬’ 등이 담겨 있다. 내년 3월에는 드뷔시 기념 연주회도 열린다. 19세기 말의 위대한 작곡가와 21세기 초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만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칠 향연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외에도 드뷔시 100주기 기념 행사가 1년 내내 이어진다니 더욱 마음이 설렌다.

고두현 논설위원·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