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경제계는 지배·사업구조 재편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순환출자 해소’ ‘일감 몰아주기 근절’ ‘지주회사 지분규제’ 등과 같은 공약이 속속 정책화되거나 입법 대기에 들어가면서다. 지난 12월에만 현대중공업그룹 CJ그룹 현대산업개발 태광그룹 SK케미칼 등이 그룹 틀을 바꾸거나 기존 경영 구조를 손질했다. 연초에는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 등이 나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대자동차·SK그룹… 새해부터 구조개편에 '분주'
오너 계열사 지분 어떻게 줄이나

기업들이 가장 주목하는 정책 중 하나는 기존 순환출자 구조 해소다. “3년 안에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여당 측 법안이 국회에 계류된 가운데 해당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롯데가 지난 10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룹 내 순환출자 고리를 대폭 끊어낸 데 이어 12월 말엔 현대중공업그룹이 나섰다.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지분 4.8%를 올 상반기 모두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끊어질 전망이다.

올해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현대차 그룹의 구조개편 방향이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이냐에 경제계와 자본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작년 5월 취임 당시 “순환출자가 총수 일가 지배권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현대차그룹 하나뿐”이라며 압박하기도 했다.

공정위가 지난달 20일 관련 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오너 일가가 지분 97%를 보유한 티시스 등 2개 계열사를 한국도서보급과 4월1일 합병하겠다고 발표한 태광그룹이 대표적이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있던 회사들을 기존 계열사와 합쳐 논란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설명이다.

SK그룹과 한화그룹도 관련 논란이 제기된 계열사의 오너 지분을 줄이거나 매각하는 데 나서고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아들 3형제가 지분 전량을 보유하고 있던 한화 S&C는 지난해 8월 기업분할로 나온 사업부문 법인 지분 44.6%를 ‘스틱 스페셜시츄에이션펀드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SK D&D 지분 역시 시장에 나와 있다.

지주회사도 구조개편 불가피

공정위가 강도 높은 규제를 예고하고 있는 자사주 의결권 문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사주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허용되지 않지만 기업 분할에 이은 주식 교환 방식을 통해 자회사(타회사)로 넘어간 자사주는 의결권이 살아난다. 공정위는 일부 기업이 이 같은 맹점을 활용해 최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한다고 보고 이 의결권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SK그룹 화학 관련 계열사의 소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SK케미칼은 지난달 1일 기업 분할을 하며 자사주를 전량 매각하거나 소각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이 같은 상황을 역으로 활용한 경우다. 지난해 말 회사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7.03%의 자사주를 활용해 내부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관련 규제가 확정되기 전 경영권을 지킬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또 ‘지주회사→자회사’ 및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상장사 기준)을 현행 20%에서 30%로 높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하반기 국회에 올라오면서 관련 대응도 가시화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19일 CJ대한통운 지분 20.1%를 추가로 확보한다고 밝혔다. 30%를 밑도는 CJ제일제당의 CJ대한통운 지분율은 40.2%로 높아진다.

SK그룹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여건이다. 지주사 SK(주)의 SK텔레콤 지분율은 25.2%, SK텔레콤의 SK하이닉스 지분율은 20.1%에 그쳐 각각 4.78%, 9.93%의 지분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 지분을 매입하려면 최대 7조원이 필요해 SK텔레콤을 중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등 구조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