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달러서 고꾸라진 남유럽 3국, 4만달러 넘은 미국·독일… 구조개혁이 갈랐다
“우리는 다음 단계(4만달러)로 넘어가기 위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1998년 6월 독일 시사잡지 슈피겔은 독일에 불거진 경제 위기를 이같이 표현했다. 독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3만달러를 넘은 지 4년차가 되던 시점이었다. 독일뿐만이 아니다. 3만달러대에 진입한 상당수의 나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구조적 위기는 3만달러 벽을 넘어 4만달러로 가기 위한 일종의 최종 관문이었다. 특정 산업이나 자원, 지리적 여건에 의존해 성장해왔던 국가들에 이 영역은 완전히 다른 ‘체질’을 요구했다. 위기 앞에서 국가들은 두 갈래로 갈렸다.
3만달러서 고꾸라진 남유럽 3국, 4만달러 넘은 미국·독일… 구조개혁이 갈랐다
◆국가 개조가 승부를 갈랐다

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은 4만달러 돌파 국가 중 중동과 인구 500만 명 이하 국가를 제외한 10개국(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호주 네덜란드)을 선별해 성장 경로를 분석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로 진입하던 시점에 위기에 직면했다. 위기에 대응해 구조 개혁을 성공시킨 나라는 4만달러로 직행했고, 그러지 못한 국가는 3만달러 벽에 갇히거나 2만달러대로 추락하기도 했다.

3만달러서 고꾸라진 남유럽 3국, 4만달러 넘은 미국·독일… 구조개혁이 갈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이다. 1996년 3만달러를 넘어선 독일은 2년 후 다시 2만달러로 뒷걸음질쳤다. 동·서독 통일 이후 취업난과 연금 부담 등에 따른 재정적자로 2001년에는 2만3000달러까지 밀렸다. 위기감을 느낀 독일은 ‘아젠다 2010’이라는 구조 개혁을 추진했다. 경제 세제 교육 연구개발(R&D) 노동 복지 등 각 분야의 판을 다시 짜는 국가 개조 작업이었다. 법인세율을 낮추고 구조조정 속도를 높였다. 고용 유연성은 강화했다. 그 결과 성장세로 전환했고 2007년 4만달러 벽을 넘었다.

앞서 1990년 전후에 3만달러 선에 도달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3국도 1990년대 초 위기를 겪었다. 성장률이 둔화되고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재정수지는 나날이 악화됐다. 1993년 이들 국가의 1인당 GNI는 나란히 2만달러 중반으로 추락했고 결국 수술에 착수했다. 부실은행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복지제도도 손댔다. 실업급여 수급 기한을 줄이고 노동유연성을 높여 청년층과 중장년층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했다. 이런 노력으로 2004~2005년께 나란히 4만달러를 돌파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경제 기반과 산업 경쟁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재정투입과 저환율, 저금리, 부동산 활황에 기대 3만달러대에 도달한 국가들은 위기를 맞아 여지없이 고꾸라졌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3개국이 대표적 사례다. 2008년 3만5500달러, 3만2000달러에 달했던 스페인과 그리스는 2016년 각각 2만6000달러, 1만8000달러까지 추락했다. 구조개혁과 재정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 컸다.

1992년 일찌감치 3만달러를 넘은 일본은 3년 만에 곧바로 4만달러를 돌파했으나, 이후 장기침체를 겪으면서 20년째 3만달러 벽에 갇혀 있다. 뛰어난 산업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수출 점유율 하락에 따른 경상수지 둔화, 재정 수지 악화, 저출산·고령화 등이 겹치면서 4만달러대에 안착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구조개혁을 밀어붙이면서 경제활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4만달러 국가의 6대 조건

현대경제연구원은 4만달러 돌파 국가들의 공통점 분석을 통해 ‘혁신 성장’ ‘생산성 향상’ ‘성장과 함께하는 분배’ ‘일자리 활력 강화’ ‘건전한 국가재정’ ‘출산율 제고’ 등 여섯 가지를 핵심 동력으로 제시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속적 R&D 투자, 제조업 및 서비스업의 고도화, 금융산업 완화 등을 통해 정체된 성장률을 끌어올린 게 이들 국가의 대표적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4만달러에 도달한 국가들은 세제 개혁과 복지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근로자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고 방만한 복지 제도를 정리했다. 대신 세제 개편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촉진하고 중산층의 실질 소득을 늘렸다. 또 일자리 활력을 높이기 위해 실업급여를 줄이는 대신 직업훈련, 취업알선, 일자리 창출의 비중을 확대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