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개인 사무실에서 한경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개인 사무실에서 한경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헌법 제7조에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진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이런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입맛에 따라 4대 권력기관(검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감사원)장을 임명하고 권력을 휘두르니 자연히 서열짓기와 줄 세우기 풍토가 만연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전 의장은 2018년에 70세를 맞이했다. 70년의 역사를 지난 제헌국회와 나이가 같다. 그래서 자신을 ‘제헌둥이’라고 불렀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에서 5선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을 거친 뒤 다시 흰색 가운을 입고 부산 봉생병원장으로 돌아왔다. “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으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개헌 논의를 어떻게 보십니까.

“헌법은 시대를 투영하는 거울인데 역사가 바뀌고 시대 요구가 바뀌면 헌법도 그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1987년 체제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고 봅니다. 지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오염되고 주변엔 간신배가 넘쳐납니다. 탄핵 사태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 개인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결국 권력구조의 시스템 문제입니다.”

▷내각책임제로 가야 한다는 것인가요.

“우리는 왕 같은 정신적인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내각제는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국민 직선의 대통령이 국가 대표자로서의 상징성과 함께 의회 해산권을 갖고,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내치(內治)와 외치(外治)를 맡는 이원집정부제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4대 권력기관장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인사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올리면 대통령이 재가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물론 행정부에 쏠린 권력구조를 손질하다 보면 상당한 권력이 국회로 넘어올 텐데 국민의 신뢰가 담보돼야 가능한 일입니다.”

▷국회 불신에는 ‘과잉 입법’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의원 입법이 국회 법제실 검토를 거쳐 (10명 이상의) 동료 의원들의 도장만 받으면 바로 가능하니 수천 개 법안이 남발됩니다. 예전에는 소속 정당의 정책위원회 검토와 최고위원회의 승인까지 받아야 입법이 가능했습니다. 의원 1명당 9명이 지원되는 보좌직원도 선거활동에 동원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입법 골격을 충분히 만들라는 뜻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경제민주화 조항을 헌법 조문에 구체적으로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시장경제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시장경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사회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 국회 입법입니다. 현재 한국의 노동 유연성은 법적 기틀을 갖춘 150여 개 국가 중 133등에 지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강성 노조의 입김,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해보면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아예 경제가 몰락할 수 있습니다.”

▷선거구제 개편도 개헌의 쟁점입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돼야 하고 화합의 축제가 돼야 하는데 되레 분열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 때문입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양당제가 뿌리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중대선거구제와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거대 양당 외에도 다양한 교섭단체 정당이 나오는 다당제로 갈 수 있죠.”

▷양당구도를 깨트린 국민의당의 등장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국민의당은 호남 출신 의원들이 절반 이상 의석을 점한 지역 중심의 정당입니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공천 잘못과 중도층 유권자를 사로잡지 못한 더불어민주당의 문제 등이 겹쳐 나타난 인위적 다당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한 다음 선거에서 다시 양당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당제가 필요한가요.

“그래도 국민의당 출현은 반가운 일입니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후 여야가 타협과 대화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식물국회가 될 것이라고 진작 예견했습니다. 교섭단체 정당 기준을 20석에서 10석으로 줄여서 여러 교섭단체가 등장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과반수가 동의하면 나머지는 따라가 주는 선진 질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교섭단체 정당이 5개 나오면 연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의장직을 마치면 원 소속 정당으로 복당하는 게 관례였는데 아직 무소속으로 남아 있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당시 새누리당은 제가 신한국당 시절부터 사랑했던 당의 모습이 아닌 ‘박근혜 사당’이었습니다. 그 당에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죠. 대선 후 제3지대 정치세력을 만들어보려고 애쓰다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열흘 전쯤 다 포기하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특히 (한국당의) 김성태·홍문표·나경원 의원과 (바른정당의) 유승민·정병국·하태경 의원 등은 모두 제가 아끼는 후배들인데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정당정치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절대 보스정당이 돼서는 안 됩니다. 특히 보수정당은 그동안 인재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그래도 인재들이 꽤 있었지만 이회창 총재 때부터 후진 양성 노력이 딱 끊겼습니다. 총재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당직에 앉아 공천에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우리 정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가 돼야 합니다.”

● 정의화 前 국회의장은…

△1948년 부산 출생 △1967년 부산고 졸업 △1973년 부산대 의대 졸업 △1985년 김원묵기념봉생병원 병원장 △15·16·17·18·19대 국회의원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제19대 후반기 국회의장

박종필/김소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