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국보다는 늦은 1960년대 산업화에 뛰어들어 비교적 짧은 기간에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문턱까지 올라선 데는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수출 주력 산업이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금 상태의 산업구조를 유지하며 3만달러 벽을 넘어 4만달러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지엔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가 많다. 기존 경제성장 모델이 한계에 봉착한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산업 육성만으론 4만달러 도달 못해… 주력 산업 생산성 끌어올려야"
“주력 산업 경쟁력 한계 봉착”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경제전문가 1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우려는 확연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언제까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냐’는 질문에 전문가 70% 이상이 “길어야 5년 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50%는 “향후 3~5년 정도만 경쟁력이 유지될 것”이라고 했고, 21.5%는 “1~3년만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등 경쟁국의 빠른 추격으로 수출 주도 산업을 기반으로 한 성장 모델이 한계에 다다를 시기가 머지않았다는 게 전문가들 우려다.

이미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크게 감소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종재 수출이 자국에 유발하는 부가가치율(2014년 기준)은 미국 87.2%, 중국 82.6%, 일본 78.9%이지만 한국은 63.3%에 불과하다. 한국은 원자재·중간재의 해외조달과 조립가공품 수출 비중이 높아 수출 과정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부가가치가 큰 탓이다. 이 때문에 “수출 부가가치가 고용, 연관부문 영업이익, 세수 등으로 파급되는 경로도 위축돼 수출의 경제성장 견인력이 약해졌다”(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는 분석이다.

주력 산업의 생산성도 ‘만년 하위권’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국내총생산÷총근로시간)은 33.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7위다. 소득 4만달러대인 독일(59.8달러) 캐나다(48.9달러) 영국(47.9달러) 수준까지만 도달하려 해도 지금보다 최소 40%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

신산업 육성·혁신성장도 중요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산업 혁신 전략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전통 주력 산업의 리노베이션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응답자의 절반이 “주력 산업 생산성 향상과 고부가가치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창업 벤처 활성화를 통한 신성장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보는 응답자는 20.6%에 그쳤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신산업 육성이나 혁신성장도 필요하지만 혁신 아닌 성장도 중요하다”며 “우리가 강점을 지닌 전통 주력 산업을 재구축해 앞으로도 경쟁력을 계속 키워나가는 데 정부와 민간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역시 “창업 생태계 중심의 혁신성장 대책도 좋지만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처럼 기존 주력 산업의 리노베이션을 병행해야 우리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력 산업의 재구축을 위해선 ‘노동유연성 확대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36.3%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업의 연구개발(R&D) 확대(28.4%) △수도권 규제를 포함한 과감한 규제철폐(22.5%) △부실기업 구조조정(12.7%) 순이었다.

서비스업 혁신 없이는 ‘반쪽’

전문가들은 4만달러에 적합한 산업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선 서비스산업 혁신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서비스산업 노동생산성은 제조업 대비 45.1%(2014년 기준)로 프랑스(87.8%) 미국(82.6%) 영국(80.8%) 등의 절반 수준이다. 원격의료 및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변호사와 다른 전문자격사 간 동업 허용, 인터넷은행 육성 등 서비스산업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절실하지만 이익집단의 반발이나 정부·여당의 ‘은산(銀産) 분리 규제’ 등에 막혀 별다른 진척이 없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융·복합화를 통해 수출의 다각화와 고부가가치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며 “서비스 규제 철폐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