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2018년 유럽, 살얼음판 위에서 희망을 얘기하다
반(反)이민과 반EU(유럽연합), 포퓰리즘이 맹위를 떨치는 유럽에서 2017년은 약한 희망을 본 한 해였다. 돌이켜보면 난민, 테러,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유럽 기득권 정당에 대한 반감은 마침내 2016년 영국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찬성으로 나타났다. 1년 전 유럽은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의 총선거를 앞두고 있었으며, 포퓰리즘 정당의 약진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네덜란드와 프랑스 선거에서 포퓰리즘 세력이 비틀거렸다. 비록 원내 진출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독일도 집권당이 제1당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당초 우려하던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위안 삼을 만하다.

그렇다면 새해에도 이런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도처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이탈리아를 보자. 이미 의회가 해산돼 3월 총선 준비에 들어간 이 나라에서는 직접민주주의, 반EU, 반이민을 내세우는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五星)운동’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이민과 EU에 반대하는 지역주의 성향의 ‘북부동맹’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어서 중도파 정당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거의 성장하지 못하고 경제위기를 간신히 비껴간 나라, 갤럽에 따르면 올해 경제전망을 작년보다 더 비관적으로 보는 국민이 60%에 달하는 이 나라의 현실을 본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협상은 또 다른 변수로 올해 뉴스거리를 계속 생산할 것이다. 탈퇴협상이 지난달에 간신히 타결됐으나, 올해는 이행기 협상과 양자 간 새로운 관계 협상이 진행된다. 내년 3월 이후의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협상은 오히려 작금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으며, 노동 이동을 포함한 단일시장 이슈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증폭될 것이다.

독일 상황도 만만치 않다. 메르켈은 아직도 연정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지부진한 대연정 협상에다가 집권 기민당에 새로운 대표가 필요하다는 내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유럽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기에는 내부 정비에 너무 바쁘다. 오스트리아는 더 심각하다. 이민에 반대하는 우파 국민당은 극우파 자유당과 손잡고 정부를 구성했다. 자유당이 외교, 국방 등을 장악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가 올해 하반기 EU 의장국을 수임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폴란드, 헝가리 등 중부유럽 EU 국가들의 반EU, 반이민 성향은 이미 위험수준을 넘고 있다.

그러면 올해 유럽은 파국으로 가는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재작년부터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한 유럽 경제는 작년 2% 중반대의 성장을 보인 것으로 추정되며, 약간 둔화돼도 올해 그 추세를 이어갈 것이다. 물가가 약간 불안하기는 하지만 실업률은 크게 낮아져 유럽시민의 이성이 더 강하게 작동할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자신의 지지율 등락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 경제개혁과 EU 및 유로존 개혁,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안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독일의 연정은 결국 구성될 것이며, 브렉시트 협상은 벼랑 끝에서 타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유럽인들은 기억한다. 종교개혁과 영국 국교회 성립으로 살육과 배신이 판쳤던 16세기, 토머스 모어는 참수를 당하면서도 희망을 노래했다. 미국, 러시아, 중동, 북한에서 오는 외부적 위험에 비한다면, 그리고 이런 위험을 순화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유럽에서는 희망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은가.

김흥종 <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유럽선임파견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