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주산지 미국·남미 피해땐
주요 곡물가격 50% 오를 가능성
대두박 가격 한때 11% 상승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2년 농산물 시장에 큰 타격을 준 라니냐가 2018년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네덜란드 라보은행을 인용해 올겨울 라니냐가 나타날 확률은 75%에 달한다고 전했다. 라보은행은 농산물과 농업 관련 투자에 특화된 은행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14일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의 해수면 온도(9~11월 평균)가 평년보다 0.6도 낮은 약한 라니냐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번 겨울에는 70~80%의 확률로 라니냐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엘니뇨와 반대인 라니냐는 적도 무역풍이 강해지며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떨어지는 현상이다. 이는 대류 변화를 일으켜 미국 중서부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주요 곡창지대에 가뭄을, 동남아시아와 호주에 많은 비와 사이클론을 불러온다. 북미와 남미는 콩과 옥수수 세계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가뭄 피해가 홍수보다 크다는 점에서 통상 라니냐가 나타나면 엘니뇨 때보다 농산물 값이 가파르게 오른다.
농산물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건 건조한 날씨로 미국(세계 1위), 브라질(세계 2위)의 콩 생산량이 줄어들 가능성이다. 옥수수도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 최근 15년 동안 라니냐가 발생하면 옥수수 값은 평균 95% 올랐다. 호주 동부의 날씨가 예년보다 습윤해지면 수확기를 맞는 이 지역의 밀 생산이 영향을 받게 된다. 세계 1위인 브라질의 커피 생산도 불안하다. 에릭 놀런드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라니냐가 오면 콩 옥수수 밀 등의 곡물 가격이 50%까지 폭등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곡물, 콩의 글로벌 수요가 크게 늘면서 농산물 시장은 생산량 변화에 민감하다.
◆콩 옥수수 커피 밀 등 영향권
심각했던 마지막 라니냐는 2012년 발생했다. 당시 미국 중서부 전역에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해 콩은 부셸당 18달러, 옥수수는 8달러까지 올랐다. 지금은 각각 9.6달러와 3.5달러 수준이다. 콩·밀 1부셸은 27.2㎏, 옥수수는 25.4㎏이다. 가격이 2012년 최고치 수준으로 다시 치솟는다면 콩은 87%, 옥수수는 130% 오르게 된다. 또 콜롬비아 등에는 많은 비로 커피 곰팡이병이 번져 커피 생산량이 줄었다.
라니냐가 확실해지려면 한 달 정도 해수면 온도가 낮은 상황이 더 지속돼야 한다. 트레이시 앨런 JP모간증권 상품(농산물) 전략가는 “가격과 변동성 모두가 급변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아르헨티나의 기후 변화와 브라질 남부의 건조한 날씨 전망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라보은행에 따르면 대두박 세계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에선 지난해 10월 중순~11월 중순 대두박 가격이 라니냐 현상에 대해 반응해 11% 올랐다. 다만 그 이후 가격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라니냐 충격은 농산물에 국한하지 않는다. 1998~2000년의 라니냐는 미국과 캐나다에 예년보다 추운 겨울을 몰고와 천연가스 값을 상승시켰다. 최근 북미에 한파가 닥쳐 천연가스 값이 오르고 있다. 다만 지난 몇 년간 북미 셰일가스 생산량이 늘어나 폭등 가능성은 낮다.
라니냐 현상이 발달하다가 돌연 사라지는 사례도 있다. 1950년 이래 라니냐는 총 13번 발생했으며, 2016년 말 기상학자들은 라니냐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봤지만 강도가 약해 별 피해가 없었다.
■ 라니냐(La Nina)
동태평양의 적도 지역에서 무역풍이 평년보다 강해지며 해수면 온도가 떨어지는 현상. 동남아시아와 호주의 강수량이 크게 증가해 홍수가 일어나고 페루와 칠레 지역에는 가뭄을 동반하기도 한다. 엘니뇨(El Nino)와 반대되는 현상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