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헌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부터 들어내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 아닌 경제 자유화
경제적 자유 없이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 존재할 수 없어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경제적 자유 없이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 존재할 수 없어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너도나도 개헌이다. 정치인들이 앞다퉈 내놓은 신년사는 우려스러운 북핵이 아니라 개헌에 온통 무게가 실려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국민의 개헌 열망을 받드는 것이 올해 최대 과제’라는 제 논 물 대기식 표현에 이르면 정치인들은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올 뿐이다.
국민은 과연 개헌을 열망하고 있을까. 북핵 문제, 고용 불안정과 불안한 노후,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의 복합 위기보다 개헌이 급하다고 생각할까. 하긴 그런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데 개헌이 지름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바라는 개헌은 정치인이 생각하는 개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권력구조 개편만을 생각한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야당이 특히 그렇다. 대통령 제도를 4년 중임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이원집정부제로 갈 것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대통령 임기가 4년 중임이면 선진국이 되고, 이원집정부제가 되면 갑자기 태평성대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5년 단임이라서 안 되는 일은 없다. 임기 초반 1년은 준비하느라, 후반 1년은 레임덕에 시달리느라 엉망이 됐고 앞뒤 안 보고 밀어붙인 탓에 ‘제왕적 대통령’이 됐다는 건 핑계다. 진영논리에 정신이 팔려 5년간 국가와 국민을 뒷전으로 둔 결과일 뿐이다. 5년이어서 안 되는 걸 10년 준다고 되겠는가. 정치권의 개헌 출발점이 그 수준이라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
국민에겐 뭐니 뭐니 해도 민생이 우선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면 그것이 국민의 행복 아니겠는가. 국민이 생각하는 개헌이 정치하는 사람들과 다른 이유다.
핵심은 헌법적 가치를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에 집중돼야 한다. 시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행복추구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수단으로서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우리 헌법 아닌가.
문제는 70년간 아홉 차례 개헌이 이뤄지는 동안 헌법이 적지 않게 훼손됐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87헌법’에서다. 권위주의 정부에 반대하던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에 따라 만들어진 ‘민주화 헌법’이 87헌법이다. 그런 까닭에 애초 자유에 대한 가치와 이를 지키겠다는 각오가 결여돼 있다. 119조가 대표적이다. 1항에 경제적 자유를 분명히 명시했지만 2항에서는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강조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의 기능을 국가에 위임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경제적 자유를 전반적으로 짓누르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법체계가 경제적 자유를 속박하면서 규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성장보다 분배가 강조되면서 경제 활력은 눈에 띄게 저하됐고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고용 불안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거꾸로 증세, 기업을 옥죄는 규제 남발, 노동 개혁과 규제 개혁 지연 등으로 경제는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장경제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이 87헌법인 것이다.
개헌 과정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경제민주화 조항부터 들어내는 일이다.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왜 규정돼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법을 아는 사람들은 헌법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원칙만 싣고 폐해가 있으면 정부가 법률로 적절히 개입하면 된다고 말한다. 아예 헌법 9장의 경제조항을 모두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길을 열어놓는 한 경제는 살아날 길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을 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다. 야당은 자신들의 몰락이 스스로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를 잊은 탓이라는 걸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만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사이 개헌 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가 아닌 포퓰리즘을 향해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적 자유의 틀 안에서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 틀 안에서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경제적 자유야말로 다른 모든 자유를 지탱하는 자유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경제적 자유 없이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경제적 자유가 없는 개헌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국민은 과연 개헌을 열망하고 있을까. 북핵 문제, 고용 불안정과 불안한 노후,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의 복합 위기보다 개헌이 급하다고 생각할까. 하긴 그런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데 개헌이 지름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바라는 개헌은 정치인이 생각하는 개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권력구조 개편만을 생각한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야당이 특히 그렇다. 대통령 제도를 4년 중임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이원집정부제로 갈 것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대통령 임기가 4년 중임이면 선진국이 되고, 이원집정부제가 되면 갑자기 태평성대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5년 단임이라서 안 되는 일은 없다. 임기 초반 1년은 준비하느라, 후반 1년은 레임덕에 시달리느라 엉망이 됐고 앞뒤 안 보고 밀어붙인 탓에 ‘제왕적 대통령’이 됐다는 건 핑계다. 진영논리에 정신이 팔려 5년간 국가와 국민을 뒷전으로 둔 결과일 뿐이다. 5년이어서 안 되는 걸 10년 준다고 되겠는가. 정치권의 개헌 출발점이 그 수준이라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
국민에겐 뭐니 뭐니 해도 민생이 우선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면 그것이 국민의 행복 아니겠는가. 국민이 생각하는 개헌이 정치하는 사람들과 다른 이유다.
핵심은 헌법적 가치를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에 집중돼야 한다. 시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행복추구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수단으로서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우리 헌법 아닌가.
문제는 70년간 아홉 차례 개헌이 이뤄지는 동안 헌법이 적지 않게 훼손됐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87헌법’에서다. 권위주의 정부에 반대하던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에 따라 만들어진 ‘민주화 헌법’이 87헌법이다. 그런 까닭에 애초 자유에 대한 가치와 이를 지키겠다는 각오가 결여돼 있다. 119조가 대표적이다. 1항에 경제적 자유를 분명히 명시했지만 2항에서는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강조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의 기능을 국가에 위임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경제적 자유를 전반적으로 짓누르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법체계가 경제적 자유를 속박하면서 규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성장보다 분배가 강조되면서 경제 활력은 눈에 띄게 저하됐고 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고용 불안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거꾸로 증세, 기업을 옥죄는 규제 남발, 노동 개혁과 규제 개혁 지연 등으로 경제는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장경제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옷이 87헌법인 것이다.
개헌 과정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경제민주화 조항부터 들어내는 일이다.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왜 규정돼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법을 아는 사람들은 헌법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원칙만 싣고 폐해가 있으면 정부가 법률로 적절히 개입하면 된다고 말한다. 아예 헌법 9장의 경제조항을 모두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길을 열어놓는 한 경제는 살아날 길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을 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다. 야당은 자신들의 몰락이 스스로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를 잊은 탓이라는 걸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만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사이 개헌 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가 아닌 포퓰리즘을 향해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적 자유의 틀 안에서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 틀 안에서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경제적 자유야말로 다른 모든 자유를 지탱하는 자유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경제적 자유 없이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경제적 자유가 없는 개헌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