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인 동시에 다수자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다수로서 소수를 외면하는 경우 많지만
자기 이익만 좇는다면 '공유의 비극' 초래
소수에 대한 감수성 길러 배려할 줄 알아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자기 이익만 좇는다면 '공유의 비극' 초래
소수에 대한 감수성 길러 배려할 줄 알아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한번은 한 여자대학을 방문했다가 남자화장실을 찾지 못해 난처한 적이 있었다. 다수가 편안하게 느끼는 질서 속에서 소수가 겪는 불편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기가 다수 입장에 서게 될 때 소수의 불편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지하철 개찰구가 오른손잡이에게 편리하게 설계돼 있다거나 어떤 잔에는 오른손잡이에게 보이는 면에만 예쁜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가 평소에 이런저런 차별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다수는 소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곤란을 겪는지 모를 때가 많다. 부모가 도와줘야 하는 숙제를 내는 선생님처럼 전혀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수에게 가혹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 사회의 이해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상호 관련돼 있으며 극도로 세분될 수 있다. 노동자라고 통칭해도 그 안의 이해관계는 대단히 복잡다기하다. 이런 입장과 생각의 다양성 속에서 어떤 정책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다수를 자기의 지지기반으로 삼으려는 것은 정치의 본질적 속성이므로 정치세력으로선 최대한 다수를 끌어들일 수 있도록 의제를 통합해 공약집을 작성하게 된다. 이렇게 마련된 공약집 속의 개별 의제들은 서로 관련이 없거나 심지어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구색 갖추기에 불과한 것도 있다. 우리가 선거과정에서 늘 겪는 일이다.
그 결과 자기가 지지하는 정책이 공약에 포함됐다고 해서 모두 고르게 대표되는 것은 아니다. 미성년자 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처럼 투표권 자체가 아예 없거나 노숙자, 치매환자, 정신장애인 등 결집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 그룹도 존재한다. 이들은 통상적인 정치과정에서 대표되기 어렵다. 그 결과 공약으로 포섭되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의제가 무수히 존재한다. 그 정책을 보고 투표할 사람이 적거나 투입비용에 비해 효과가 단기간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책은 현실정치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기 쉽다.
다수결이 반드시 현명한 선택 또는 올바른 선택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니며,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구성원이 각자 상대방에게 발생하는 비용이 얼마가 되든지 자신의 최대한의 이익만 추구할 때 ‘공유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을 경험하게 된다.
다수결에서 자신의 의견이 관철될 때 우리는 승리에 도취되며, 군중과 일체감에 빠진 개인은 몰아적 황홀감과 권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 환각에 불과하다. 선거에서 다수결로 승리한 정치세력의 지지자라고 해서 반드시 다수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개별 국민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서는 다수 입장에 서다가 어떤 문제에서는 소수 입장에 서기도 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무관청으로부터 ‘보편적 인권’을 다루는 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설립 허가가 거부된 적이 있다. 자신은 ‘일반적이고 종합적인 인권옹호단체’의 설립 허가만 주관하므로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이 설립 불허 처분을 취소했다. 인권옹호는 본래 개별적 인간을 전제로 하고 인권옹호 영역을 개별적 구체적 부분과 이에 대비되는 일반적 종합적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인권문제는 설령 소수자에 대한 것이라도 우리 모두의 문제며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보편성을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성혼을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에 속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많은 동성혼 가정에서 아이를 입양하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는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권력자의 지위에 있다. 동성혼 가정에 입양될 아이들은 목소리조차 없는 소수다.
우리는 언제든 소수가 될 수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이미 소수에 속해 있다. 한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수의 지위에서 소수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을 수도 있다. 스스로 항상 다수의 일원이라거나 항상 소수에 속한다는 착각을 버리고, 소수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지하철 개찰구가 오른손잡이에게 편리하게 설계돼 있다거나 어떤 잔에는 오른손잡이에게 보이는 면에만 예쁜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가 평소에 이런저런 차별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다수는 소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곤란을 겪는지 모를 때가 많다. 부모가 도와줘야 하는 숙제를 내는 선생님처럼 전혀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수에게 가혹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 사회의 이해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상호 관련돼 있으며 극도로 세분될 수 있다. 노동자라고 통칭해도 그 안의 이해관계는 대단히 복잡다기하다. 이런 입장과 생각의 다양성 속에서 어떤 정책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다수를 자기의 지지기반으로 삼으려는 것은 정치의 본질적 속성이므로 정치세력으로선 최대한 다수를 끌어들일 수 있도록 의제를 통합해 공약집을 작성하게 된다. 이렇게 마련된 공약집 속의 개별 의제들은 서로 관련이 없거나 심지어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구색 갖추기에 불과한 것도 있다. 우리가 선거과정에서 늘 겪는 일이다.
그 결과 자기가 지지하는 정책이 공약에 포함됐다고 해서 모두 고르게 대표되는 것은 아니다. 미성년자 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처럼 투표권 자체가 아예 없거나 노숙자, 치매환자, 정신장애인 등 결집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 그룹도 존재한다. 이들은 통상적인 정치과정에서 대표되기 어렵다. 그 결과 공약으로 포섭되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의제가 무수히 존재한다. 그 정책을 보고 투표할 사람이 적거나 투입비용에 비해 효과가 단기간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책은 현실정치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기 쉽다.
다수결이 반드시 현명한 선택 또는 올바른 선택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니며,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구성원이 각자 상대방에게 발생하는 비용이 얼마가 되든지 자신의 최대한의 이익만 추구할 때 ‘공유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을 경험하게 된다.
다수결에서 자신의 의견이 관철될 때 우리는 승리에 도취되며, 군중과 일체감에 빠진 개인은 몰아적 황홀감과 권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 환각에 불과하다. 선거에서 다수결로 승리한 정치세력의 지지자라고 해서 반드시 다수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개별 국민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서는 다수 입장에 서다가 어떤 문제에서는 소수 입장에 서기도 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무관청으로부터 ‘보편적 인권’을 다루는 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설립 허가가 거부된 적이 있다. 자신은 ‘일반적이고 종합적인 인권옹호단체’의 설립 허가만 주관하므로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이 설립 불허 처분을 취소했다. 인권옹호는 본래 개별적 인간을 전제로 하고 인권옹호 영역을 개별적 구체적 부분과 이에 대비되는 일반적 종합적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인권문제는 설령 소수자에 대한 것이라도 우리 모두의 문제며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보편성을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성혼을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에 속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많은 동성혼 가정에서 아이를 입양하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는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권력자의 지위에 있다. 동성혼 가정에 입양될 아이들은 목소리조차 없는 소수다.
우리는 언제든 소수가 될 수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이미 소수에 속해 있다. 한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수의 지위에서 소수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을 수도 있다. 스스로 항상 다수의 일원이라거나 항상 소수에 속한다는 착각을 버리고, 소수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