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에 1부투어 데뷔한 샛별
드라이버·퍼팅 '입스'로 슬럼프
작년 2부투어서 '눈물젖은 빵'
캐디백 멘 친언니 멘탈 코치로
샷감 되찾고 생애 첫승 도전장
“치유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많이 배웠어요. 퍼트감을 회복했고 자신감도 찾았고요.”
권지람은 열여덟 살이던 2012년 준회원 신분으로 2부 투어 대회에서 깜짝 우승한 뒤 이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1부 투어에 혜성처럼 데뷔했다. 하지만 금방 잡힐 듯하던 우승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스윙을 만들려다 오히려 ‘호환마마(천연두)보다 무섭다’는 입스(yips)가 찾아왔다. 권지람은 “남들은 입스가 뭔지도 모르고 잘만 친다던데, 나는 그런 공포가 두 번이나 왔다”며 “골프가 한때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드라이버를 잡으면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백스윙이 아예 되지 않았다. 2번 우드로 티샷을 하던 어린 시절 습관을 드라이버 티샷으로 바꾸려다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가까스로 드라이버 입스를 잡자 이번엔 퍼트가 고장 났다. “1m짜리 쉬운 쇼트 퍼팅에서 3퍼트를 여섯 번이나 한 날도 있으니 말 다 했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식이장애까지 생겨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날도 많았었요.” 한 달도 안돼 체중이 4㎏ 넘게 빠졌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이가 친언니 권지은 프로(25)다. 동생을 위해 기꺼이 캐디백을 메주고 멘탈 코치를 자처했다. “언니가 저보다 골프도 잘 쳤지만 입스도 더 심하게 겪었거든요. 그 경험에서 얻은 비법을 제가 이어받았죠.”
‘언니의 처방’은 잡생각 제거와 자신감 찾기였다. 짧은 퍼트 실수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1m 안팎 퍼트는 아예 연습 스트로크조차 하지 않고 퍼팅하는 위험한 베팅을 했다. 눈 감고 퍼팅해보라는 조언도 언니가 선물한 ‘결정적 한 방’이었다. 권지람은 “두 가지 방법 다 생각이 끼어들 여지를 줄이는 거였는데, 진짜 감각이 빨리 살아났다”며 “6개 대회에서 써먹을 정도로 감이 좋아졌다”고 했다. 비거리를 줄인 것도 자신감 회복을 위해서였다. 그는 한때 KLPGA 투어 비거리 서열 ‘톱10’에까지 올라간 장타자였다. 260야드대의 비거리는 그의 자존심이었다. “거리 욕심을 버리니까 정확도가 높아졌고, 자신감이 올라오는 연쇄반응이 왔어요. 골프가 완전히 달라진 거죠.”
권지람은 동갑내기 개띠 장수연, 조정민과 절친이다. 우승 경력이 있고 팬층이 두터운 선수들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했죠. 자극이 됐어요 오히려. 어차피 퍼팅을 잡지 않으면 1부 투어에 복귀해도 친구들과 경쟁할 수 없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부 투어에서 퍼팅이라도 완성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죠.”
무술년 새해 목표는 1부 투어 첫 승이다. 2부 투어에선 지난해 10월 2승째를 수확해둔 터. 여기에 시드전까지 제패했으니 우승하는 법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기회가 되면 일본 투어에 진출해보고 싶어요. 물론 그 전에 KLPGA에서 먼저 이름을 알려야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고, 이젠 잃을 것도 없잖아요.”
충주=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