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저널] 어처구니 없는 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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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위협' 속 마주 앉은 남북
대화는 좋지만 제재 양보는 안돼
우리 안의 분열 봉합이 더 중요"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
대화는 좋지만 제재 양보는 안돼
우리 안의 분열 봉합이 더 중요"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
순수 우리말인 ‘어처구니’는 맷돌을 돌리는 손잡이를 말한다. 윗돌과 아랫돌로 이뤄진 맷돌은 그 이분법적 구도 때문에 상하, 좌우, 여야, 이상과 현실 등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어제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오랜만에 마주 앉은 것도 이런 이분법적 특성을 지닌 맷돌에 비유할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매개로 마주 앉은 ‘남북 맷돌’은 이제 세계의 주목거리가 돼 버렸다.
국내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고 언급한 부분을 강조하며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대화에서 “100%”라는 표현은 ‘적극적인’ 정도의 통상적 구어체일 뿐 ‘100%’라는 숫자와는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어찌됐건 남북대화를 보는 지구촌의 눈은 입장에 따라 매우 다르고 복잡하다. 제재에 무게를 두는 미국에 대해 대화를 강조하며 엇박자를 내 온 한국을 대놓고 면박할 수 없는 미국의 당혹감은 말할 것도 없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에 짜증이 나 있는 중국, 한국의 위안부 문제 재론으로 야기된 신뢰 부재를 거론하고 있는 일본의 시각 등은 ‘한반도 방정식’을 어렵게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를 포함한 해외 미디어의 반응은 “한·미 동맹을 이간질하고 약화시키려는 (북한의) 의도를 우려하며, 운동장 밖 사이드라인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게 미국”이라고 보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NYT는 또 “남북대화는 의제를 올림픽 문제에 국한시켜야 하고 남한이 나중에 후회하게 될 양보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경제계는 한국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지만 요즘 워싱턴의 기류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의 분위기를 연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코노미스트도 “2018 세계 경제는 성장을 구가할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은 세계 경제를 한 방에 훅 날려버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운전대를 쥐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의 평가는 “내 책상의 핵 단추”를 들먹이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김정은 손에 어처구니(주도권)가 쥐어져 있다는 평가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남들의 사시(斜視)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현 정부의 공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일단 협상장에 나온 북한의 모양새는 궁벽하기 그지없다. 어찌 보면 제재의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북한을 문재인 정부가 타이밍 좋게 구해 준 것일 수도 있다. 회담의 계기가 된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 피겨 스케이팅 외에 별다른 참가 종목을 갖지 못한 북한은 액면보다 과잉포장된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위에 한국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까지 얹어 양보하려 할 경우, 한국은 한·미 동맹 균열이라는 부담을 져야 하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이런 모든 시나리오의 전개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핵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북한의 변함없는 입장이다. 북이 쥐고 있는 유일한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남북 맷돌’을 돌게 할 어처구니가 남북문제를 풀 수 있는 ‘긍정적인 요술 지팡이’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맷돌은 윗돌과 아랫돌의 크기와 균형이 맞아야 한다. 특히 어처구니를 돌리는 손이 하나가 아니고 누군가와 맞잡고 돌려야 하는 경우 상호 조화로운 호흡과 리듬 또한 중요한 사안임은 말할 것도 없다. 남북협상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 맷돌’은 돌리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남한 사회는 더 돌리기 어려운 ‘죽은 맷돌’처럼 정지해 있다. 좌와 우, 젊은이와 노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지리멸렬하게 분열된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어 줄 포용적 어처구니(리더십)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2018년에 찾아내야 할 숙제임에 틀림없다.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
국내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고 언급한 부분을 강조하며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대화에서 “100%”라는 표현은 ‘적극적인’ 정도의 통상적 구어체일 뿐 ‘100%’라는 숫자와는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어찌됐건 남북대화를 보는 지구촌의 눈은 입장에 따라 매우 다르고 복잡하다. 제재에 무게를 두는 미국에 대해 대화를 강조하며 엇박자를 내 온 한국을 대놓고 면박할 수 없는 미국의 당혹감은 말할 것도 없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에 짜증이 나 있는 중국, 한국의 위안부 문제 재론으로 야기된 신뢰 부재를 거론하고 있는 일본의 시각 등은 ‘한반도 방정식’을 어렵게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를 포함한 해외 미디어의 반응은 “한·미 동맹을 이간질하고 약화시키려는 (북한의) 의도를 우려하며, 운동장 밖 사이드라인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게 미국”이라고 보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NYT는 또 “남북대화는 의제를 올림픽 문제에 국한시켜야 하고 남한이 나중에 후회하게 될 양보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경제계는 한국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지만 요즘 워싱턴의 기류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의 분위기를 연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코노미스트도 “2018 세계 경제는 성장을 구가할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은 세계 경제를 한 방에 훅 날려버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운전대를 쥐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의 평가는 “내 책상의 핵 단추”를 들먹이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김정은 손에 어처구니(주도권)가 쥐어져 있다는 평가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남들의 사시(斜視)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현 정부의 공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일단 협상장에 나온 북한의 모양새는 궁벽하기 그지없다. 어찌 보면 제재의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북한을 문재인 정부가 타이밍 좋게 구해 준 것일 수도 있다. 회담의 계기가 된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 피겨 스케이팅 외에 별다른 참가 종목을 갖지 못한 북한은 액면보다 과잉포장된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위에 한국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까지 얹어 양보하려 할 경우, 한국은 한·미 동맹 균열이라는 부담을 져야 하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이런 모든 시나리오의 전개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핵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북한의 변함없는 입장이다. 북이 쥐고 있는 유일한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남북 맷돌’을 돌게 할 어처구니가 남북문제를 풀 수 있는 ‘긍정적인 요술 지팡이’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맷돌은 윗돌과 아랫돌의 크기와 균형이 맞아야 한다. 특히 어처구니를 돌리는 손이 하나가 아니고 누군가와 맞잡고 돌려야 하는 경우 상호 조화로운 호흡과 리듬 또한 중요한 사안임은 말할 것도 없다. 남북협상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 맷돌’은 돌리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남한 사회는 더 돌리기 어려운 ‘죽은 맷돌’처럼 정지해 있다. 좌와 우, 젊은이와 노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지리멸렬하게 분열된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어 줄 포용적 어처구니(리더십)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2018년에 찾아내야 할 숙제임에 틀림없다.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