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청소·경비직 근로자 등이 1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시도 저지’ ‘인원 감축, 저질 일자리 양산 반대’ 구호가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 청소·경비직 근로자 등이 1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시도 저지’ ‘인원 감축, 저질 일자리 양산 반대’ 구호가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영세 자영업자가 많아 가파르게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심하게 위축될 소지가 큰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쇼크’를 과소평가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고용 감소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자신한 데 이어 11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일자리 안정자금 등 대책을 충분히 만든 만큼 빠른 속도로 안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하면서다. 경제·노동 전문가들은 정부가 달라진 경제 및 고용 환경을 간과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시적 충격에 그칠 것이라고 위안하다간 근본적 대책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와 너무 다른 경제환경

낙관론을 주장하는 정부는 과거 사례를 근거로 내세운다. 최저임금이 12.3% 오른 2007년에도 고용은 단기간 충격에 그쳤다는 것이다. 2006년 말 30만 명대이던 서비스업 취업자 증가폭은 2007년 1월 20만 명대로 떨어졌지만 석 달 만에 다시 30만 명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당시 실질 성장률은 5.5%에 달했다. 올해 정부 목표치(3.0%)의 두 배에 육박한다. 물가상승분까지 감안한 경상성장률에선 8% 대 4.7%로 더 벌어진다. 경제회복 속도는 고용 증가와 밀접하다. 고용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건설 부문의 올해 성장이 크게 위축될 전망이라는 점도 고용에 부정적이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도 당시와는 다르다. 2007년에는 두 자릿수로 인상했지만 2008년 8.3%, 2009년 6.1%, 2010년 2.75%로 인상률이 크게 낮아졌다. 반면 지금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언하고 있다. 올해 16.4% 인상에 이어 내년부터 3년간 매년 15% 안팎의 인상률을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은 “경제성장률이 사실상 반 토막 난 만큼 기업이 감수할 수 있는 비용 부담 규모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산업 내 경쟁이 치열한 업종이나 영세 자영업자에게선 당장 ‘최저임금 인상 쇼크’가 발생하고 예상보다 길게 부정적인 영향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과 경제상황 너무도 다른데… 그때처럼 고용 회복된다는 정부
◆비용 인상 요인은 ‘첩첩산중’

주변 환경도 2007년과는 너무나 다르다. 무엇보다 올해는 기업의 비용 인상 요인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저(低)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 허용’과 ‘취업규칙 변경 완화’를 담은 고용노동부의 양대 지침이 폐기된 데 이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통상임금 범위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이 본격 시행되거나 도입을 앞두고 있다. 비용 인상 요인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고용을 늘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무인화 등으로 과거와 고용 여건 자체가 달라진 데다 각종 비용 인상 요인이 겹치면서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이미 기업의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 예상보다 ‘고용 대란’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본 대책 서둘러야”

정부는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으로 충격이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많다. 영세 사업장은 대부분 고용보험 가입이 안돼 지원 자격이 없는 데다 정부 지원을 받아 고용보험에 가입하더라도 사업주 추가 부담이 불가피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형국’이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거나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늘려주는 등 근본적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산업별·지역별 경영환경이나 소득수준이 다른 만큼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은정/오형주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