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논점과 관점] 벌주기와 오기가 정책 주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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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올해부터 시행되는 세법 개정안의 특징은 한마디로 ‘핀셋 증세’다.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를 25%로 올리고 소득세의 경우 과표 3억~5억원은 38%에서 40%로, 5억원 초과는 40%에서 42%로 세율을 인상하는 것이 골자다. 다주택자에 양도소득세를 중과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기업과 고소득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이다.
'갑' 손보기가 정책 주류 돼
이번 세법 개정안이 특히 관심을 끈 이유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세법 개정에서는 어떤 분야에 돈을 얼마나 쓰고 소득재분배는 어떻게 할지, 장기 세수는 어떻게 관리할지 등 정책의 큰 가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전문가 중 상당수는 “이런 세법 개정은 처음 보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조세원칙이나 재정 철학에 근거하기보다는 “가진 자들로부터 좀 더 빼앗자”는 다분히 감정 섞인 분풀이 내지 ‘벌주기’ 성격이 강하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세수 확보나 소득재분배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예상되는 추가세수는 연간 약 3조~4조원 정도다.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추진에 필요한 재원(178조원)의 2%에 불과하다. 법인세 인상은 소득재분배 효과도 없는 데다 궁극적으로 국민 부담만 늘 뿐이다.
걱정되는 것은 이런 유의 정책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부동산 정책만 해도 그렇다. 장기적 공급 확대나 주거 안정보다는 “투기자들을 때려잡자”는 식의 다분히 감정적 대응이 주를 이룬다.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청와대 수석의 발언에서는 ‘오기’마저 느껴진다. 4개월간 논란을 빚은 파리바게뜨 사태도 비슷하다. 20년 전 만든 파견법이 프랜차이즈업태의 특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상존하는데도 정부는 법 개정보다는 ‘법대로’만을 외치며 무리하게 파리바게뜨 본사에 제빵사 직고용을 밀어붙였다. “대기업이니 좀 혼나거나 손해 봐도 된다”는 심리가 없었다고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비슷하다. 지금 도처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각종 부작용은 대부분 사전에 예견됐지만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을’인 종업원 월급 좀 올려주자는데 ‘갑’인 고용주들 부담이 좀 늘어난들 대수냐”는 시각이 정부 여당을 지배한 결과다. 여권에서는 지금도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은 일시적이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것이라는 ‘오기’가 지배하는 듯하다.
소위 ‘갑’으로 여겨지는 누군가를 다분히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정책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재벌 혼내고 오느라 늦었다”는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다. 물론 각종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의지도 있을 테고 지지층을 의식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 정책의 기조가 편을 갈라 일방을 벌주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을'이 눈물 흘리는 결과 속출
당장 부동산 규제는 강남 집값은 폭등시킨 반면 지방 부동산 시장은 죽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사업자를 한계로 내몰고 사회적 약자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정부가 ‘을’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양극화는 오히려 심해지고 사회 갈등의 골도 더 깊어만 간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 정책은 표를 얻기 위한 자극적 선거공약과 같을 수는 없다. 아무리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다고 해도 지금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들은 결코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성숙한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갑' 손보기가 정책 주류 돼
이번 세법 개정안이 특히 관심을 끈 이유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세법 개정에서는 어떤 분야에 돈을 얼마나 쓰고 소득재분배는 어떻게 할지, 장기 세수는 어떻게 관리할지 등 정책의 큰 가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전문가 중 상당수는 “이런 세법 개정은 처음 보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조세원칙이나 재정 철학에 근거하기보다는 “가진 자들로부터 좀 더 빼앗자”는 다분히 감정 섞인 분풀이 내지 ‘벌주기’ 성격이 강하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세수 확보나 소득재분배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예상되는 추가세수는 연간 약 3조~4조원 정도다.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추진에 필요한 재원(178조원)의 2%에 불과하다. 법인세 인상은 소득재분배 효과도 없는 데다 궁극적으로 국민 부담만 늘 뿐이다.
걱정되는 것은 이런 유의 정책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부동산 정책만 해도 그렇다. 장기적 공급 확대나 주거 안정보다는 “투기자들을 때려잡자”는 식의 다분히 감정적 대응이 주를 이룬다.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청와대 수석의 발언에서는 ‘오기’마저 느껴진다. 4개월간 논란을 빚은 파리바게뜨 사태도 비슷하다. 20년 전 만든 파견법이 프랜차이즈업태의 특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상존하는데도 정부는 법 개정보다는 ‘법대로’만을 외치며 무리하게 파리바게뜨 본사에 제빵사 직고용을 밀어붙였다. “대기업이니 좀 혼나거나 손해 봐도 된다”는 심리가 없었다고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비슷하다. 지금 도처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각종 부작용은 대부분 사전에 예견됐지만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을’인 종업원 월급 좀 올려주자는데 ‘갑’인 고용주들 부담이 좀 늘어난들 대수냐”는 시각이 정부 여당을 지배한 결과다. 여권에서는 지금도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은 일시적이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것이라는 ‘오기’가 지배하는 듯하다.
소위 ‘갑’으로 여겨지는 누군가를 다분히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정책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재벌 혼내고 오느라 늦었다”는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다. 물론 각종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의지도 있을 테고 지지층을 의식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 정책의 기조가 편을 갈라 일방을 벌주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을'이 눈물 흘리는 결과 속출
당장 부동산 규제는 강남 집값은 폭등시킨 반면 지방 부동산 시장은 죽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사업자를 한계로 내몰고 사회적 약자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정부가 ‘을’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양극화는 오히려 심해지고 사회 갈등의 골도 더 깊어만 간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 정책은 표를 얻기 위한 자극적 선거공약과 같을 수는 없다. 아무리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다고 해도 지금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들은 결코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성숙한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