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독재자들의 '음악정치'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바그너가 유대인을 싫어했다는 게 그중 하나였다. 바그너는 무명시절 자신의 곡을 봐 주지 않고 냉정하게 내쳤던 유대인 음악가에 대한 미움을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바그너의 음악에 민족을 구원하는 영웅 이야기 등 독일인의 자긍심을 치켜세우는 내용이 담긴 것은 히틀러를 사로잡은 또 다른 요인이었다.

히틀러는 독일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세뇌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이용했다. 나치 집회 시작 땐 바그너의 ‘마이스터징거’ 서곡이 울려퍼졌고, ‘지크프리트 목가’는 나치 당가(黨歌)로 사용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극장 주인들에게 “오페라 공연 내용을 역사 속 영웅이 등장하는 것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영웅들이 승리를 거둔 전투 장면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투영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베토벤의 ‘영웅’을 특히 좋아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바치려고 이 곡을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민주주의와 자유·평등·박애를 구현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뒤 ‘헌정’을 철회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예술은 인민을 사회주의로 몰고가는 혁명적 수단”이라며 중국 전통 경극을 혁명영웅 이미지를 강조하는 현대극으로 개조할 것을 지시했다. 많은 독재자들이 이렇게 음악을 순수예술이 아니라 지배 수단으로 활용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代)도 예외는 아니다. 우상화와 체제 찬양에 음악을 동원했다. 김일성은 “혁명적인 노래는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적의 심장을 뚫을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일은 음악정치를 ‘선군(先軍)정치’를 떠받치는 주요한 수단으로 여겼다.

김정은도 이런 기조를 이어받았다. 그는 2012년 모란봉 악단을 만들었다. 시범공연에서 단원들이 미니스커트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노래해 “변화가 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모란봉 악단을 ‘제일근위병’이라고 못 박았다. 공연을 마치면 악단 가수들은 소위 계급장을 달고 나와 거수경례를 한다. 단장인 현송월은 현역 대좌(대령)다. ‘병영국가’의 선전대임을 잘 말해준다.

남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삼지연 관현악단’이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현송월이 이끄는 북한 사전점검단이 어제 한국을 방문, 공연 후보지를 둘러봤다. 북한의 공연이 김정은 체제 선전에 일방적으로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스포츠 제전 본연의 의미가 뒤로 밀려나서도 안 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