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업인 제쳐놓고 말로만 만드는 일자리
‘일자리 정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고용지표는 갈수록 악화되고 시간제 아르바이트도 줄어들고 있다. 일본은 ‘졸업생 모시기’ 전쟁이 한창이고 미국은 인하된 세금으로 ‘월급 올려주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최저임금과 법인세를 대폭 끌어올린 한국은 줄어드는 일자리 때문에 난리다. 폭발 직전인 가상화폐 대책이 시급한데 청와대 정책참모는 보조금 홍보물을 들고 동네 식당을 돌아다닌다. “햇빛을 가리지 말라”는 디오게네스의 핀잔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대기업 혼내기’보다는 일자리가 다급하다. 제조업은 생산성과 괴리된 임금체계 때문에 고용 창출이 제한적이다. 규제혁파를 통한 정보통신기술(ICT) 활성화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스콧 갤러웨이 미국 뉴욕대 교수는 4차 산업시대를 선도할 ‘넷(The Four)’으로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을 주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넥슨 김정주, 다음카카오 김범수, 네이버 이해진, 엔씨소프트 김택진 등 자수성가 ICT 개척자들이 뛰어야 한다. 이들에게도 ‘제조업 얽어매기’ 같은 족쇄를 채우면 정말 끝장이다.

바이오의약품 분야도 주목해야 한다. 의과대학에 최고의 수재들이 몰리면서 의약품 관련 연구 역량이 급상승하고 있다. 코스닥 선두기업 셀트리온은 서정진 회장이 2002년 맨손으로 창업했다. 당시 KT&G 사외이사였던 필자는 지분 투자를 호소하던 서 회장의 레이저 눈빛을 지금도 기억한다. KT&G 이사회는 생명과학 교수를 초청해 세밀하게 검토하고 지분 투자를 결정했다. 민영화 이후에도 포스코와 KT처럼 정치권력의 간섭에 시달렸던 KT&G는 바이오시밀러 개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2010년 지분 12% 전부를 3000억원에 매각함으로써 대박 기회를 걷어찼다.

대기업 출자 규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더욱 강화됐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로 합병과 분할 절차도 복잡해졌다.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공정거래위원회의 출자정리 규모가 너무 작았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늘리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산식(算式) 자체가 모호하고 국제적 비교사례도 없어 타당성을 따지기조차 민망하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자의적 규제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일자리 지옥’을 심화시킨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대박으로 벌어들인 돈을 자사주 매입 소각에 대거 투입해 발행 주식 수를 줄였지만 이론적으로 올라야 할 주가는 오히려 떨어졌다. 순현재가치(NPV)를 증가시킬 투자를 모두 채택해야 기업가치가 극대화된다. 그러나 출자규제 때문에 이의 실행이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예측이다. 삼성전자가 포기한 투자를 정부의 바람대로 중소기업이 모두 채택해 성공하면 좋으련만 기업역량과 자금코스트를 감안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량 대기업이 차선의 투자는 포기하고 고수익 투자만 유지하면 내부수익률은 상승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

출자규제를 우회하는 합작 투자도 등장한다. 제일모직 주도로 설립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3년에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으로 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주주 간 계약에 의하면 초기 자본은 바이오로직스가 투입하고 바이오젠은 올해 6월까지 ‘50%-1주’까지 매수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주력제품의 승인을 받으면서 초기자본이 3300억원인 바이오에피스의 2015년 말 지분가치 평가는 5조원을 넘어섰다.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제일모직 가치 부풀리기’로 의심을 받았지만 6월에 바이오젠의 옵션행사가 완료되면 국제적 대박실체가 드러나고 삼성물산 부당합병 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50%+1주’를 보유한 삼성에 비해 바이오젠 보유 주식은 2주 적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52% 이상 찬성으로 정하도록 주주 간 계약이 체결된 상황이라 경영권은 공동으로 행사된다. 출자규제만 없었다면 삼성의 자체적 역량으로 이익을 독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이오와 ICT는 개발단계 창의력이 핵심 동력이다. 개발자는 자금조달 단계에서 경영권을 잃을 위험을 걱정한다. 삼성이 특수목적 펀드를 조성해 주식 매수옵션을 부여하는 바이오에피스 방식으로 ICT와 바이오 개발기업의 의욕을 북돋을 필요가 있다. 3세 경영의 출발선에 있는 삼성이 국내 개발기업과의 상생협력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효과적으로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