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세탁기 분쟁 승소 한국, 7천600억원 손해액 산정

한국이 우리나라 세탁기에 부당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미국을 상대로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 한미 세탁기 분쟁과 관련한 사안이지만 공교롭게 22일(현지시간) 미국의 외국산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결정과 맞물려 양국 간에 '통상 맞불 기싸움'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정부는 22일(현지시간) 제네바 WTO 분쟁해결기구(DSB) 정례 회의에서 WTO 한미 세탁기 분쟁과 관련해 미국에 대한 양허정지 승인을 요청했다고 산업통상자원부가 23일 밝혔다.

미국이 합리적 이행 기간 내에 WTO DSB의 판정을 이행하지 않음에 따라 미국의 한국 수출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치를 신청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반덤핑 관세로 모두 7억1천100만 달러(7천6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것으로 산정했다.

이 금액만큼 미국산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미국은 2013년 2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 세탁기에 각각 9.29%(상계관세 1.85%는 별도), 13.0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같은 해 8월 WTO에 이 사안을 제소했고 2016년 9월 최종 승소했다.

WTO는 미국이 덤핑마진을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낮을 때(덤핑)만 합산하고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높을 때(마이너스 덤핑)는 '0'으로 처리해 전체 덤핑마진을 부풀리는 '제로잉 방식'으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고 판단했다.

제로잉은 WTO 반덤핑 협정에 위배된다.

미국은 제로잉 방식에 제동이 걸리자 한국산 세탁기를 첫 사례로 삼아 표적덤핑과 제로잉을 결합해 관세를 매겼지만 역시 패소했다.

미국은 규정에 따라 작년 12월 26일까지 WTO 판정을 이행해야 했지만 아무런 조처가 따르지 않자 한국 정부는 분쟁 당사국에 주어진 권한에 따라 WTO 다시 보복관세 부과 허용을 신청했다.

산업부는 "우리 측의 이번 양허정지 신청은 미국 측의 조속한 판정 이행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WTO 협정이 모든 회원국에 보장하는 절차적 권리를 적시에 행사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우리측 양허정지 요청 금액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양측을 중재하는 WTO 절차가 개시됐다.

DSB의 우리 측 양허정지 요청에 대한 승인도 WTO 중재 판정 결과가 나온 이후 시점으로 유보됐다.

중재 판정에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보복관세 부과 승인이 나면 시장 상황을 고려해 관세 부과 상품 등을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정부는 아울러 지난 12일 최종 승소한 WTO 유정용 강관 분쟁에 대해서도 미국에 반덤핑 기법 시정 등 이행을 촉구하고 불이행 시 WTO에 양허정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2014년 7월 현대제철과 넥스틸, 세아제강 등에 9.9%~15.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지난해 4월 연례 재심에서 덤핑률(관세)을 최고 29.8%로 올렸다.

정부는 WTO에 제소했고, WTO 분쟁해결 패널은 작년 11월 미국이 덤핑률을 산정하면서 한국 기업의 이윤율이 아닌 다국적 기업의 높은 이윤율을 적용해 덤핑률을 상향한 것은 WTO 협정에 위반된다고 판정했다.

이어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DSB 회의에서 이 같은 분쟁 결과가 최종 확정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분쟁 결과를 즉시 이행하거나 즉시 이행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 합리적 기간(최대 15개월) 내에 이행을 완료해야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