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의 논점과 관점] 평창의 경제학과 정치·사회학
평창올림픽 공식 행사비용은 2조8000억원이다. 중계료와 기업후원금을 다 모아도 수입은 2조5000억원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혹한 추위를 각오하며 야간 개막식을 할 정도로 중계권 판매에 역점을 둬도 역부족이다. “기업에 또 손을 내민다”는 비판까지 감내하며 1조원에 육박하는 협찬을 받아내도 모자란다.

경제로 적자, 정치·사회로는 어떨까

잔치를 코앞에 두고 돈 걱정 내색을 않을 뿐,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재정은 예사 문제가 아니다. 이낙연 총리가 전경련 행사에 참석해 “신세 진 김에 한두 가지 더 부탁드리겠다. 표 좀 사달라”고 기업들에 부탁했던 배경이다. 적자를 어떻게 메꿀지가 관심사지만, 우리 경제 규모에 3000억원 정도는 감내할 만하다. 컨테이너 박스를 숙소로 쓰며 흑자 올림픽에 성공한 노르웨이의 산촌 릴레함메르 사례도 있지만, ‘외형의 허세’가 한국의 고질병으로 자리잡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새 길과 경기장 건설비까지 합치면 평창올림픽 소요 비용은 훨씬 더 불어난다. 2014년 당시 조직위원장이던 김진선 전 강원지사는 9조원 규모라고 했다. 이후에도 비용이 계속 늘어 14조원으로 팽창했다. 물론 고속철도가 남고 ‘코리아 브랜드’ 가치도 올라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손익 계산은 쉽지 않다. ‘평창올림픽의 경제학’에서는 향후 효율적인 시설 관리나 관광한국으로의 도약 여부도 중요한 변수다.

‘평창올림픽의 정치학’은 어떨까. 안보 외교에서 우리는 ‘평화의 제전’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는가. 고조돼 온 북핵 위협 속에 ‘전쟁, 핵단추’라는 무서운 말까지 오가다 평창을 계기로 갑자기 남북한이 단일팀 구성에까지 합의했다. 남북 간 상호 방문도 진행되고 있다. 평창이 열어준 평화의 가능성이다.

문제는 ‘평창 이후’에도 이 기조가 이어질까 하는 점이다. 북한에 핵을 완성시키는 시간 여유만 줄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북쪽 예술단 응원단의 겉모습에 취해 실전배치되는 핵무기 위협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북한은 변하지 않는데 우리만 낙관론에 빠지는 ‘북핵 유포리아(euphoria·다행증)’에 대한 걱정도 그래서 나온다. 경기 한 판에, 메달 색깔에 웃고 울다가 북핵의 완성이 현실로 굳어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스포츠의 속성대로 2월의 평창은 ‘뜨거운 감성 지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평창 이후’에는 냉엄한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평화제전이라는데 4강국 정상 아무도 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 외교의 현주소다.

미국은 남북한의 개막식 공동 입장에 “북한에 자유의 맛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고 점잖게 논평했다. 정작 우리는 평창 제전을 북한 주민에게 한줄기 광명을 주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는가. ‘민족’이라는 전(前)현대적 허울을 넘어 개방과 국제화, 코즈모폴리턴 같은 미래 가치에 더 다가서는 기회가 되고 있는가.

'북핵 유포리아' 조성할까 걱정

‘평창올림픽의 사회학’도 낙관적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화합의 제전’으로 올림픽을 말할 때 국제적인 단결, 소통만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신과 취지가 우리 안에서는 구현되고 있나.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세계시민’의 기초를 다지며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갈등 증폭형 사회로 퇴행 조짐까지 보이고, 거칠어진 진영논리는 모든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돼 간다. 단일팀 구성에 대해 ‘공정하고 정당한가’라는 청년들의 문제 제기 또한 깔끔하게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평창올림픽의 정치학, 사회학’까지 적자가 될까 걱정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