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가동 줄여놓고 "공장 전기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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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급전지시 여섯 번째
탈원전에 수요 예측 빗나가
24기 중 역대 최다 11기 중단
급전지시 이번 겨울 여섯 번
탈원전에 수요 예측 빗나가
24기 중 역대 최다 11기 중단
급전지시 이번 겨울 여섯 번
한파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와중에 정부가 원자력발전소 24기 중 11기의 가동을 멈춰놨다. 가동률은 56%로 역대 최저다. 정부는 그래놓고 전력 수급이 빠듯해지자 24일 기업들에 전기 사용을 줄이라는 ‘전력 수요 감축 요청(급전지시)’을 내렸다. 이번 겨울 들어 여섯 번째다. 산업계와 에너지 전문가 사이에선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원전 가동을 줄여놓고 수요 예측이 빗나가자 산업계에 무리하게 전기 사용 감축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전력거래소를 통해 기업 1700여 곳에 2700㎿의 전력을 감축하라는 급전지시를 발동했다. 원자력발전소 설비용량이 1000㎿인 점을 고려하면 원전 3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에 육박한다. 급전지시가 내려지면 해당 기업은 공장 가동을 멈추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계획예방정비를 이유로 오전 9시부터 월성 4호기의 가동을 멈췄다. 일시 가동 중단된 원전은 11기다. 원전 절반 가까이가 동시에 가동을 멈춘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2013년 원전 납품업체가 부품성적서를 위조한 ‘원전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도 최대 10기만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췄다. 올 들어 이날까지 원전 가동률은 평균 56%로 뚝 떨어졌다.
산업부는 “일상적인 안전 예방정비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걸 알면서도 원전 11기를 중단시켜놓은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발전단가가 낮은 원전은 돌리지 않고 기업에 부담을 주는 급전지시를 계속 내리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전력 수요를 낮게 예측해 원전 가동을 줄여놨다가 수요가 급증해 전력 예비율이 10%대 초반까지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급전지시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달 만에 전력수요 예측 빗나가…"8차 전력수급계획 다시 짜야"
"전력수요 크게 늘지 않을 것" 장담과 달리
정부 전망치 올해 들어 네 번이나 초과
한파로 전력소비 급증하자 잇따라 '비상조치'
“앞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늘지 않아 탈(脫)원전을 해도 문제 없다.”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그동안 누누이 강조해온 말이다. 하지만 원전 24기 중 절반에 가까운 11기의 가동을 중단해 놓고 기업들에 ‘전력 수요감축 요청’(급전지시)을 잇따라 발령하자 “정부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탈원전 기조에 맞춰 원전 재가동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했다가 한파로 전력수요가 늘자 기업들에 부랴부랴 전기 사용을 줄이라고 지시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장기 전력수급의 합리적인 전망을 반영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달 만에 빗나간 정부 예상
정부는 지난해 12월29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에서 2017년 동계(2017년 12월~2018년 2월)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를 8520만㎾(100만㎾=1000㎿)로 잡았다. 원전 8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을 초과하는 규모다. 하지만 이 전망치는 올해 들어 네 번이나 빗나갔다. 지난 11일과 12일 최대 전력수요는 8561만㎾, 8550만㎾였다. 23일에는 8544만㎾, 24일에는 역대 최대인 8628만㎾를 기록했다.
급기야 정부는 급전지시를 통해 전력수요를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이번 겨울 들어 여섯 번째 발령을 내렸다. 정부가 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제시한 이번 겨울 급전지시 목표량은 하루 기준 1616㎿였다. 하지만 정부는 12일 3300㎿로 목표치를 두 배 이상 뛰어넘는 급전지시를 내렸다. 24일에도 목표치를 1000㎿ 이상 웃도는 2700㎿의 급전지시를 발령했다.
이번 겨울 들어 전력 예비율(공급 예비율)은 14~15%대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와 발전업계는 예비율이 두 자릿수면 전력 공급이 안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경우 비상조치에 들어간다. 최근 급전지시가 발령되지 않았으면 예비율은 11% 정도까지 떨어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8차 전력수급계획 예상치가 빗나간 것은 이상 한파를 감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상 한파뿐 아니라 여러 요소를 감안해 전력수급계획을 짰어야 했다”며 “전력수급계획은 15년간의 계획을 미리 짜는 것인데 한 달 만에 예측이 빗나간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전 가동률은 최저
월성 4호기가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감에 따라 가동을 멈춘 원전은 역대 가장 많은 11기가 됐다. 안전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한 원전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예방정비에 걸리는 시간이 통상 3개월이었다. 하지만 고리 3호기, 신고리 1호기, 한빛 4호기는 격납건물 플레이트 보수와 증기발생기에서 발견된 이물질 제거 등 때문에 300일 넘게 정비를 받고 있다.
이처럼 문제점이 발견돼 재가동 승인이 안 나는 경우도 있지만 원자력계에서는 원안위가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춰 예전만큼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전 가동률이 정부가 탈원전을 본격 추진한 지난해 71%까지 내려간 게 최저였는데, 올 들어선 56%까지 떨어졌다. 환경단체 출신으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당시 ‘건설 반대’ 측에 섰던 강정민 전 KAIST 초빙교수가 지난 2일 원안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앞으로 이런 추세가 강화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손 교수는 “급전지시는 기업에 전기 사용을 줄이라고 하는 대신 돈을 줘야 한다”며 “기업은 공장을 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값비싼 수요 관리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발전단가가 낮은 발전소를 우선 돌리고 비상시에만 급전지시를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전력거래소를 통해 기업 1700여 곳에 2700㎿의 전력을 감축하라는 급전지시를 발동했다. 원자력발전소 설비용량이 1000㎿인 점을 고려하면 원전 3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에 육박한다. 급전지시가 내려지면 해당 기업은 공장 가동을 멈추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계획예방정비를 이유로 오전 9시부터 월성 4호기의 가동을 멈췄다. 일시 가동 중단된 원전은 11기다. 원전 절반 가까이가 동시에 가동을 멈춘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2013년 원전 납품업체가 부품성적서를 위조한 ‘원전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도 최대 10기만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췄다. 올 들어 이날까지 원전 가동률은 평균 56%로 뚝 떨어졌다.
산업부는 “일상적인 안전 예방정비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걸 알면서도 원전 11기를 중단시켜놓은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발전단가가 낮은 원전은 돌리지 않고 기업에 부담을 주는 급전지시를 계속 내리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전력 수요를 낮게 예측해 원전 가동을 줄여놨다가 수요가 급증해 전력 예비율이 10%대 초반까지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급전지시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달 만에 전력수요 예측 빗나가…"8차 전력수급계획 다시 짜야"
"전력수요 크게 늘지 않을 것" 장담과 달리
정부 전망치 올해 들어 네 번이나 초과
한파로 전력소비 급증하자 잇따라 '비상조치'
“앞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늘지 않아 탈(脫)원전을 해도 문제 없다.”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그동안 누누이 강조해온 말이다. 하지만 원전 24기 중 절반에 가까운 11기의 가동을 중단해 놓고 기업들에 ‘전력 수요감축 요청’(급전지시)을 잇따라 발령하자 “정부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탈원전 기조에 맞춰 원전 재가동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했다가 한파로 전력수요가 늘자 기업들에 부랴부랴 전기 사용을 줄이라고 지시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장기 전력수급의 합리적인 전망을 반영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달 만에 빗나간 정부 예상
정부는 지난해 12월29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에서 2017년 동계(2017년 12월~2018년 2월)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를 8520만㎾(100만㎾=1000㎿)로 잡았다. 원전 8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을 초과하는 규모다. 하지만 이 전망치는 올해 들어 네 번이나 빗나갔다. 지난 11일과 12일 최대 전력수요는 8561만㎾, 8550만㎾였다. 23일에는 8544만㎾, 24일에는 역대 최대인 8628만㎾를 기록했다.
급기야 정부는 급전지시를 통해 전력수요를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이번 겨울 들어 여섯 번째 발령을 내렸다. 정부가 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제시한 이번 겨울 급전지시 목표량은 하루 기준 1616㎿였다. 하지만 정부는 12일 3300㎿로 목표치를 두 배 이상 뛰어넘는 급전지시를 내렸다. 24일에도 목표치를 1000㎿ 이상 웃도는 2700㎿의 급전지시를 발령했다.
이번 겨울 들어 전력 예비율(공급 예비율)은 14~15%대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와 발전업계는 예비율이 두 자릿수면 전력 공급이 안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경우 비상조치에 들어간다. 최근 급전지시가 발령되지 않았으면 예비율은 11% 정도까지 떨어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8차 전력수급계획 예상치가 빗나간 것은 이상 한파를 감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상 한파뿐 아니라 여러 요소를 감안해 전력수급계획을 짰어야 했다”며 “전력수급계획은 15년간의 계획을 미리 짜는 것인데 한 달 만에 예측이 빗나간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전 가동률은 최저
월성 4호기가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감에 따라 가동을 멈춘 원전은 역대 가장 많은 11기가 됐다. 안전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한 원전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예방정비에 걸리는 시간이 통상 3개월이었다. 하지만 고리 3호기, 신고리 1호기, 한빛 4호기는 격납건물 플레이트 보수와 증기발생기에서 발견된 이물질 제거 등 때문에 300일 넘게 정비를 받고 있다.
이처럼 문제점이 발견돼 재가동 승인이 안 나는 경우도 있지만 원자력계에서는 원안위가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춰 예전만큼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전 가동률이 정부가 탈원전을 본격 추진한 지난해 71%까지 내려간 게 최저였는데, 올 들어선 56%까지 떨어졌다. 환경단체 출신으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당시 ‘건설 반대’ 측에 섰던 강정민 전 KAIST 초빙교수가 지난 2일 원안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앞으로 이런 추세가 강화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손 교수는 “급전지시는 기업에 전기 사용을 줄이라고 하는 대신 돈을 줘야 한다”며 “기업은 공장을 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값비싼 수요 관리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발전단가가 낮은 발전소를 우선 돌리고 비상시에만 급전지시를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