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여자 말을 들어야 내집마련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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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 성공기(3)
중소 증권사에 다니는 직장인 A씨(46)는 결혼 후 10년 간의 재테크 과정을 복기하면서 “집사람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전세 난민 신세일 것”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자신은 노후 설계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증권·금융 전문가. 증권이 부동산보다 휠씬 나은 재테크 수단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결혼 전까지 집은 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결혼을 앞두고 “집부터 사자”고 했다.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늦은 나이(30대 후반)에 결혼하면서 집도 없이 살 수 없다.” 그는 반대했다. 집을 사야하는 이유의 설득력이 떨어졌다. 논리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알고지내던 주변 부동산 전문가들도 하나 같이 경제성장률 저하, 인구감소, 정부 부동산대책 등을 거론하며 “집을 살 타이밍이 아니다”며 말렸다. 그때(2005년)는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안정대책 영향으로 집값이 횡보할 때였다. 가진 돈도 부족했다. 아내가 말한 아파트를 사려면 1억원 이상 대출을 껴야했다. 그렇게 큰 돈을 빌리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이자부담은 또 어쩌고. 아내는 맞벌이를 하니까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잘못하면 결혼도 깨질 거 같아 와이프 말을 듣기로 했다. 마포 염리삼성 전용 84㎡를 3억원대에 사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대출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맞벌이여서 대출 원금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줄어 들었다. 집값도 1억원 가까이 올라줘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경기 판교신도시에 청약할 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재테는 멈추는 게 아니다”며. “집은 한채면 족하다” “경쟁률이 높아서 당첨 안 될건데 뭐하러 쓸 데 없는 짓 하느냐”고 했다가 면박만 당했다. “결혼 때 집 안 샀으면 아직 전세난민 신세일 걸.” 사실이 그랬다. 집값이 멀찍이 달아나버린 터라 목돈이 모이길 기다렸다면 내집마련이 요원해졌을 것이다. 말릴 수가 없었다. 내심 “설마 당첨 되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동판교 금호어울림 9단지 38평형에 덜컥 당첨됐다. 혁신학교를 품고 있는 데다 신분당선 판교역 역세권이어서 지금 판교신도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단지다. 아내는 “운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따라온다”며 자랑했다.
입주 때가 돼 1억원 정도 차익을 남기고 마포 아파트를 팔고 넓은 새집으로 이사했다. 삶의 품격이 달라졌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또래 중에 자신만큼 자산을 일군 이도 드물었다.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날마다 부동산카페 등을 들락거리더니 2016년 봄 “서울 강남으로 진입해야겠다”고 선언했다. 설마설마 했는데, 그해 여름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17평형을 14억5000만원에 덜컥 계약해 버렸다. 그것도 대출을 9억원이나 끼고 매입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입자금 마련하려면 판교집은 정리하고 전세를 얻어야 했다. 이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는 것도 이해가 안됐다. 대출규모도 어이가 없었다. 아내는 “인구 감소 시대가 와도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을 집을 사야 안심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잔금을 한뒤 결산을 해보니 판교집에서 생긴 차익은 5억원 정도였다. 개포동 집은 현재 3억원 가까이 올랐다. 아내는 “새집이 부족해지고 있어 계속 오를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요즘 주변 친구들을 보면 아내 말을 듣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변 직장 동료나 친구 중에는 40대 중후반임에도 전세 사는 사람들이 많다. 증권사 사람들은 주식만 쳐다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돈을 모으기는 커녕 빚을 진 이들도 부지기수다. 술자리에서 이들의 노후 걱정을 듣다보면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사실 아내의 재테크 방식은 장인 어른과 거꾸로다. 장인은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1기 신도시 분양 때는 분당 대신 일산의 60평형대를 택했다. 직장에서 더 가깝다는 이유 하나에서다. 그러다가 호수공원 근처에서 분양되는 주상복합으로 이사했다. 저층에 상가 등 편의시설이 많다는 점에 반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집은 일산에서 가장 싼 집으로 변했다. 낡은 데다 주변 일반 아파트와 달리 재건축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서다. 눈앞의 편안함만 좇으면서 외곽으로, 투자가치가 떨어지는 상품으로 계속 이동한 결과다. 그래서 아내는 장인을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부른다. 아내가 어이없어 하는 건 장인이 그럼에도 “이 곳이 제일 살기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는 점이다.
부동산 투자는 여자들이 휠씬 잘한다. 남자들은 지나치게 논리적이다. 생산인구가 감소한다는 둥, 경기가 나쁘다는 둥 이런 저런 걱정을 하다가 기회를 다 놓친다. 여자는 감이 뛰어나다. 기회다 싶으면 과감하게 지를 줄도 안다. 욕심도 많다. “남편들이여. 재테크에 성공하려면 아내말을 들어라.”
정리=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그러나 아내는 결혼을 앞두고 “집부터 사자”고 했다.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늦은 나이(30대 후반)에 결혼하면서 집도 없이 살 수 없다.” 그는 반대했다. 집을 사야하는 이유의 설득력이 떨어졌다. 논리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알고지내던 주변 부동산 전문가들도 하나 같이 경제성장률 저하, 인구감소, 정부 부동산대책 등을 거론하며 “집을 살 타이밍이 아니다”며 말렸다. 그때(2005년)는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안정대책 영향으로 집값이 횡보할 때였다. 가진 돈도 부족했다. 아내가 말한 아파트를 사려면 1억원 이상 대출을 껴야했다. 그렇게 큰 돈을 빌리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이자부담은 또 어쩌고. 아내는 맞벌이를 하니까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잘못하면 결혼도 깨질 거 같아 와이프 말을 듣기로 했다. 마포 염리삼성 전용 84㎡를 3억원대에 사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대출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맞벌이여서 대출 원금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줄어 들었다. 집값도 1억원 가까이 올라줘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경기 판교신도시에 청약할 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재테는 멈추는 게 아니다”며. “집은 한채면 족하다” “경쟁률이 높아서 당첨 안 될건데 뭐하러 쓸 데 없는 짓 하느냐”고 했다가 면박만 당했다. “결혼 때 집 안 샀으면 아직 전세난민 신세일 걸.” 사실이 그랬다. 집값이 멀찍이 달아나버린 터라 목돈이 모이길 기다렸다면 내집마련이 요원해졌을 것이다. 말릴 수가 없었다. 내심 “설마 당첨 되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동판교 금호어울림 9단지 38평형에 덜컥 당첨됐다. 혁신학교를 품고 있는 데다 신분당선 판교역 역세권이어서 지금 판교신도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단지다. 아내는 “운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따라온다”며 자랑했다.
입주 때가 돼 1억원 정도 차익을 남기고 마포 아파트를 팔고 넓은 새집으로 이사했다. 삶의 품격이 달라졌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또래 중에 자신만큼 자산을 일군 이도 드물었다.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날마다 부동산카페 등을 들락거리더니 2016년 봄 “서울 강남으로 진입해야겠다”고 선언했다. 설마설마 했는데, 그해 여름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17평형을 14억5000만원에 덜컥 계약해 버렸다. 그것도 대출을 9억원이나 끼고 매입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입자금 마련하려면 판교집은 정리하고 전세를 얻어야 했다. 이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는 것도 이해가 안됐다. 대출규모도 어이가 없었다. 아내는 “인구 감소 시대가 와도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을 집을 사야 안심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잔금을 한뒤 결산을 해보니 판교집에서 생긴 차익은 5억원 정도였다. 개포동 집은 현재 3억원 가까이 올랐다. 아내는 “새집이 부족해지고 있어 계속 오를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요즘 주변 친구들을 보면 아내 말을 듣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변 직장 동료나 친구 중에는 40대 중후반임에도 전세 사는 사람들이 많다. 증권사 사람들은 주식만 쳐다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돈을 모으기는 커녕 빚을 진 이들도 부지기수다. 술자리에서 이들의 노후 걱정을 듣다보면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사실 아내의 재테크 방식은 장인 어른과 거꾸로다. 장인은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1기 신도시 분양 때는 분당 대신 일산의 60평형대를 택했다. 직장에서 더 가깝다는 이유 하나에서다. 그러다가 호수공원 근처에서 분양되는 주상복합으로 이사했다. 저층에 상가 등 편의시설이 많다는 점에 반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집은 일산에서 가장 싼 집으로 변했다. 낡은 데다 주변 일반 아파트와 달리 재건축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서다. 눈앞의 편안함만 좇으면서 외곽으로, 투자가치가 떨어지는 상품으로 계속 이동한 결과다. 그래서 아내는 장인을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부른다. 아내가 어이없어 하는 건 장인이 그럼에도 “이 곳이 제일 살기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는 점이다.
부동산 투자는 여자들이 휠씬 잘한다. 남자들은 지나치게 논리적이다. 생산인구가 감소한다는 둥, 경기가 나쁘다는 둥 이런 저런 걱정을 하다가 기회를 다 놓친다. 여자는 감이 뛰어나다. 기회다 싶으면 과감하게 지를 줄도 안다. 욕심도 많다. “남편들이여. 재테크에 성공하려면 아내말을 들어라.”
정리=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