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생명보험 계약 많다고 부당취득 목적 단정 못해"… 악용은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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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다수의 생명보험계약 체결과 보험금 부정취득 목적 판단
(대법원 2001년 11월27일 선고 99다33311 판결)
김선정 <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
(대법원 2001년 11월27일 선고 99다33311 판결)
김선정 <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
보험은 불확실한 미래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해서 든다. 당장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미래를 챙길 여력이 없다. 생계가 곤란한 상황은 아니라 해도 과도한 보험료로 부담이 크다면 건전한 가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보험을 불로소득의 방편으로 생각하고 ‘계약쇼핑’에 나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형적인 사례가 과도한 ‘다수계약’이다. 상부상조 정신에 터를 잡은 아름다운 제도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일이 늘고 있다. 아래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A는 자신을 보험계약자 겸 피보험자로 해 여러 보험사와 54건의 보험계약을 맺었다. 그가 재해사망사고 시 받을 보험금은 51억원 정도였다. 지방의 B협동조합에 근무하는 그의 수입은 연 3000만원 정도의 급여와 김양식장 등에 수천만원을 출자해 얻는 수익금이었다. 사고 당시 A가 낸 월 보험료는 500만원 정도였다.
A는 면세유 부당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외출 중에 경찰이 사무실로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차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 편도 2차로가 1차로로 좁아지는 굽은 고속도로 길을 90~100㎞ 속도로 주행해 중앙선을 50m 정도 침범하고 마주오던 화물차를 들이받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A의 보험계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라는 것이었다.
1심 법원은 피보험자가 수입에 비해 과다하게 보험에 가입한 것이 신의칙(信義則)이나 민법 제103조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며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상소심 법원 판결도 같았다. 대법원도 단지 계약 건수가 많고 내는 보험료와 받을 보험금이 많으며 그 발생 경위가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보험 가입 동기가 자살에 의해 보험금을 노린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연봉의 두 배가 넘는 보험료를 낼 자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연봉 외에 “김양식장 등에 수천만원을 투자해 상당한 수입을 얻고 있었다”고만 밝혔다.
보험금을 받아 낼 목적으로 행해지는 행위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며 법과 약관의 규제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다수보험 가입 사례는 흔히 있어 왔고, 위 판결 전에도 법원에서 다툰 사례가 제법 있다. 운전 중 중앙선 침범 후 급가속해 사망한 보험사고 발생 당시 32건의 보험계약을 유지하며 보험료 총액이 매월 250만원 정도인 피보험자가 당시 지방기능직 10급으로 월평균 소득 150만원임을 고려할 때 다른 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험계약은 무효라고 한 하급심 판결이 1999년에 있었다. 그 이듬해에 대법원은 보험에 가입할 때부터 오로지 보험사고를 유발하거나 가장해 보험금을 받아 낼 목적으로 체결한 보험계약은 무효여서 다른 상속인도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99다49064 판결). 그러나 위 사건은 보험계약자가 스스로 범죄행위를 한 경우여서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99다33311’ 판결이 충격을 준 것은 정황상 보험금 부정취득을 노린 보험계약이어서 무효로 봐야 한다는 보험업계의 기대가 깨진 데 있다. 제아무리 미래의 불확실한 경제적 손실에 철저하게 대비하려는 사람이라도 비슷한 담보를 내용으로 하는 보험계약을 54건이나 맺고, 다른 수입이 있다고 해도 주된 소득원이라고 할 직장에서 받는 연봉의 두 배를 보험료로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설사 A의 죽음이 우연한 것이었어도 비슷한 내용의 보험에 30건 이상 가입한 것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라고 업계는 봤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계약이 순수한 목적으로 보험 제도를 이용한 것이라고 봤다. A가 저축성 보험도 꽤 들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급여 외 수입이 있다는 점도 들었으나 소득 규모를 판결에서 밝히지는 않았다.
이 판결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험금부정취득 목적의 계약인지 여부를 판정할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게 됐다. 보험사들의 무분별한 마케팅도 도마에 올랐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보험사들이 패소해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부정목적계약이라는 점을 추인할 수 있는지 여부와 이를 추인할 기준들이 보다 세밀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후 판례는 가족뿐만 아니라 지인 이름으로 가입한 건수를 합산해 부정목적 여부를 따졌다. 나아가 보험금부정취득을 노린 계약이 무효로 되는 민법 제103조의 ‘반(反)사회질서의 법률행위’의 의미를 정리했고 간접사실에 의해 부정목적을 추인했다. 대법원은 2개월 정도 사이에 9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안에서 3년4개월 전의 첫 계약도 무효로 봤다.
보험금을 노렸다는 것은 보험계약자의 주관적 의사이니만큼 그 사실을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부정목적은 이를 추인할 수 있는지가 문제인데 법원은 이를 인정해왔다. 그러나 무엇을 추인을 위한 자료로 인정할지는 단순하게 유형화하기 어려운 문제여서 다툼이 이어졌다.
그동안 보험금부정목적의 추인 자료가 되는 간접사실로 법원이 꼽아온 것은 △단기간 집중 가입 △보장성보험 상품 선호 △경제력에 맞지 않는 많은 금액의 보험료 △설계사를 통하지 않은 자발적 가입 △가입 시기와 사고발생 시기의 근접성 △보험금을 받아야 할 경제적 사정 △사고 경로의 부자연성 △보험 가입 후 정황 △형사처벌받은 사실 유무 등이다. 그러나 판단기준 중 일부를 강조해 반사회성을 부정하는 판결도 있었다. 즉 △저축성보험도 있다든가 △계약자가 설계사의 가입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는 성격이라든가 △가입자가 현금 거래를 많이 하므로 세무서 신고액을 수입으로 볼 수 없다는 등 판결도 있다. 가입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험금을 노릴 이유가 없다는 설명에 이르러서는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모호한 부분도 남아 있다. 부정목적계약에 대해 보험금이 지급되면 이는 곧 다른 보험가입자에게 전가된다. 그런 점에서 법원도 여러 가지 간접사실이 누적되면 반사회성을 인정하는 심증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부분적으로 순수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강조할 일은 아니다.
다수계약은 흔히 형사범죄와 얽힌다. 다수계약을 이유로 함부로 유죄로 몰아서는 안 된다. 형사재판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는 민사재판에서도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관계에 대한 법적 평가는 엄연히 다를 수 있다. 자동차 사고로 아내가 사망해 운전자인 남편이 살인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지난해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그러나 민사법원은 이 사고로 지급될 95억원의 보험금을 ‘순수하게 생명·신체 등에 대한 우연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보험 제도를 악용해 돈벌이에 나선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수법도 교묘해졌다. 판결에만 기댈 수는 없다. 다수계약에 대한 통지를 의무화하고 투기를 유발하는 거액 상품 판매와 무분별한 인수를 자제하면서 계약정보의 교환을 실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 日선 보험금 과다청구 막으려…3건 계약도 무효 판결
일본에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보험 살인과 과다청구사건이 빈발했다.
생명보험회사들은 가입자의 계약 내용을 보험사업자단체에 등록해 다른 보험사에 제공한다는 점을 약관을 통해 가입자에게 알리고 청약서에서 가입자 동의를 얻어 등록한 후 이를 조회하는 방법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일본 법원은 3건 정도의 계약도 보험금 과다를 이유로 계약무효 판결을 하기도 하는데, 근거는 우리 민법 제103조에 해당하는 일본 민법 제90조(공서양속위반)다.
또 일본 학계는 2008년 보험법에 신설된 ‘중대 사유에 의한 해제’ 규정에 따라 보험금 과다 다수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김선정 <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
A는 자신을 보험계약자 겸 피보험자로 해 여러 보험사와 54건의 보험계약을 맺었다. 그가 재해사망사고 시 받을 보험금은 51억원 정도였다. 지방의 B협동조합에 근무하는 그의 수입은 연 3000만원 정도의 급여와 김양식장 등에 수천만원을 출자해 얻는 수익금이었다. 사고 당시 A가 낸 월 보험료는 500만원 정도였다.
A는 면세유 부당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외출 중에 경찰이 사무실로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차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 편도 2차로가 1차로로 좁아지는 굽은 고속도로 길을 90~100㎞ 속도로 주행해 중앙선을 50m 정도 침범하고 마주오던 화물차를 들이받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A의 보험계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라는 것이었다.
1심 법원은 피보험자가 수입에 비해 과다하게 보험에 가입한 것이 신의칙(信義則)이나 민법 제103조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며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상소심 법원 판결도 같았다. 대법원도 단지 계약 건수가 많고 내는 보험료와 받을 보험금이 많으며 그 발생 경위가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보험 가입 동기가 자살에 의해 보험금을 노린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연봉의 두 배가 넘는 보험료를 낼 자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연봉 외에 “김양식장 등에 수천만원을 투자해 상당한 수입을 얻고 있었다”고만 밝혔다.
보험금을 받아 낼 목적으로 행해지는 행위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며 법과 약관의 규제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다수보험 가입 사례는 흔히 있어 왔고, 위 판결 전에도 법원에서 다툰 사례가 제법 있다. 운전 중 중앙선 침범 후 급가속해 사망한 보험사고 발생 당시 32건의 보험계약을 유지하며 보험료 총액이 매월 250만원 정도인 피보험자가 당시 지방기능직 10급으로 월평균 소득 150만원임을 고려할 때 다른 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험계약은 무효라고 한 하급심 판결이 1999년에 있었다. 그 이듬해에 대법원은 보험에 가입할 때부터 오로지 보험사고를 유발하거나 가장해 보험금을 받아 낼 목적으로 체결한 보험계약은 무효여서 다른 상속인도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99다49064 판결). 그러나 위 사건은 보험계약자가 스스로 범죄행위를 한 경우여서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99다33311’ 판결이 충격을 준 것은 정황상 보험금 부정취득을 노린 보험계약이어서 무효로 봐야 한다는 보험업계의 기대가 깨진 데 있다. 제아무리 미래의 불확실한 경제적 손실에 철저하게 대비하려는 사람이라도 비슷한 담보를 내용으로 하는 보험계약을 54건이나 맺고, 다른 수입이 있다고 해도 주된 소득원이라고 할 직장에서 받는 연봉의 두 배를 보험료로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설사 A의 죽음이 우연한 것이었어도 비슷한 내용의 보험에 30건 이상 가입한 것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라고 업계는 봤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계약이 순수한 목적으로 보험 제도를 이용한 것이라고 봤다. A가 저축성 보험도 꽤 들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급여 외 수입이 있다는 점도 들었으나 소득 규모를 판결에서 밝히지는 않았다.
이 판결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보험금부정취득 목적의 계약인지 여부를 판정할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게 됐다. 보험사들의 무분별한 마케팅도 도마에 올랐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보험사들이 패소해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부정목적계약이라는 점을 추인할 수 있는지 여부와 이를 추인할 기준들이 보다 세밀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후 판례는 가족뿐만 아니라 지인 이름으로 가입한 건수를 합산해 부정목적 여부를 따졌다. 나아가 보험금부정취득을 노린 계약이 무효로 되는 민법 제103조의 ‘반(反)사회질서의 법률행위’의 의미를 정리했고 간접사실에 의해 부정목적을 추인했다. 대법원은 2개월 정도 사이에 9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안에서 3년4개월 전의 첫 계약도 무효로 봤다.
보험금을 노렸다는 것은 보험계약자의 주관적 의사이니만큼 그 사실을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부정목적은 이를 추인할 수 있는지가 문제인데 법원은 이를 인정해왔다. 그러나 무엇을 추인을 위한 자료로 인정할지는 단순하게 유형화하기 어려운 문제여서 다툼이 이어졌다.
그동안 보험금부정목적의 추인 자료가 되는 간접사실로 법원이 꼽아온 것은 △단기간 집중 가입 △보장성보험 상품 선호 △경제력에 맞지 않는 많은 금액의 보험료 △설계사를 통하지 않은 자발적 가입 △가입 시기와 사고발생 시기의 근접성 △보험금을 받아야 할 경제적 사정 △사고 경로의 부자연성 △보험 가입 후 정황 △형사처벌받은 사실 유무 등이다. 그러나 판단기준 중 일부를 강조해 반사회성을 부정하는 판결도 있었다. 즉 △저축성보험도 있다든가 △계약자가 설계사의 가입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는 성격이라든가 △가입자가 현금 거래를 많이 하므로 세무서 신고액을 수입으로 볼 수 없다는 등 판결도 있다. 가입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험금을 노릴 이유가 없다는 설명에 이르러서는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모호한 부분도 남아 있다. 부정목적계약에 대해 보험금이 지급되면 이는 곧 다른 보험가입자에게 전가된다. 그런 점에서 법원도 여러 가지 간접사실이 누적되면 반사회성을 인정하는 심증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부분적으로 순수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강조할 일은 아니다.
다수계약은 흔히 형사범죄와 얽힌다. 다수계약을 이유로 함부로 유죄로 몰아서는 안 된다. 형사재판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는 민사재판에서도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관계에 대한 법적 평가는 엄연히 다를 수 있다. 자동차 사고로 아내가 사망해 운전자인 남편이 살인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지난해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그러나 민사법원은 이 사고로 지급될 95억원의 보험금을 ‘순수하게 생명·신체 등에 대한 우연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보험 제도를 악용해 돈벌이에 나선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수법도 교묘해졌다. 판결에만 기댈 수는 없다. 다수계약에 대한 통지를 의무화하고 투기를 유발하는 거액 상품 판매와 무분별한 인수를 자제하면서 계약정보의 교환을 실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 日선 보험금 과다청구 막으려…3건 계약도 무효 판결
일본에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보험 살인과 과다청구사건이 빈발했다.
생명보험회사들은 가입자의 계약 내용을 보험사업자단체에 등록해 다른 보험사에 제공한다는 점을 약관을 통해 가입자에게 알리고 청약서에서 가입자 동의를 얻어 등록한 후 이를 조회하는 방법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일본 법원은 3건 정도의 계약도 보험금 과다를 이유로 계약무효 판결을 하기도 하는데, 근거는 우리 민법 제103조에 해당하는 일본 민법 제90조(공서양속위반)다.
또 일본 학계는 2008년 보험법에 신설된 ‘중대 사유에 의한 해제’ 규정에 따라 보험금 과다 다수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김선정 <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