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수상마을·작은 정원 석정… 시간이 멈춘 풍경
시각적 관능미가 느껴지는 긴카쿠지
교토를 여행하면서 긴카쿠지(金閣寺)를 보지 못했다면 교토를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긴카쿠지는 교토 여행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 긴카쿠지에 왔을 때만 해도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에는 나름 한산했지만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어느 계절에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긴카쿠지는 금이나 화려한 것에 매료되는 중국인 관광객은 반드시 들르는 곳이 됐다고 한다. 긴카쿠지는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다. 호수 너머로 홀로 빛을 내는 금각을 보는 순간 관광객의 입에서는 저절로 경탄이 터져 나온다. 긴카쿠지 앞에 있는 호수는 경호지(鏡湖池)라고 한다. ‘거울 못’이라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긴카쿠지 3층 누각 건물이 마치 호수에 빠진 것처럼 그림자가 돼 일렁거린다. 유홍준 교수는 긴카쿠지가 ‘시각적 관능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우아하고 날렵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모습을 보면 시각적 관능미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긴카쿠지의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라고 한다. 현재 긴카쿠지가 있는 곳에는 원래 무로마치 막부 3대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별장 기타야마전(北山殿)이 있었다. ‘로쿠온’은 아시카가의 법호인 ‘로쿠온인(鹿苑院)’에서 유래했다. 당시 긴카쿠지는 일종의 연회장이었다. 일왕을 초대해 연회를 열거나 명나라 사신을 맞이한 일종의 영빈관 역할을 했다. 이후 사찰의 다른 시설은 해체돼 다른 사찰로 옮겨지고 긴카쿠라고 불리는 사리전과 정원만 남았으며 이 사리전을 중심으로 창건한 사찰이 바로 긴카쿠지다. 긴카쿠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동명의 소설(국내에서는 금각사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긴카쿠지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을 주인공이 금각을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간직하기 위해 불을 지른 것으로 묘사했다. 실제로 긴카쿠지는 1467년과 1950년 두 차례에 걸쳐 화마를 입었다. 1950년 방화범이 저지른 화재로 긴카쿠지는 완전히 타버렸다. 21세 학승이었던 범인은 소설처럼 금각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신분열 때문에 화재를 저질렀다고 전해진다. 이후 교토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으고, 일본문화재청이 거액을 들여 금박 작업을 해서 지금처럼 찬란한 모습으로 복원했다.
고졸하고 독특한 석정이 돋보이는 료안지
교토의 사찰 순례지로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료안지다. 료안지는 절 자체보다 석정(石庭)이라 불리는 돌 정원이 명성을 떨친다. 료안지는 일본 중세 무로마치 막부의 무인 호소카와 가쓰모토(細川勝元)가 1450년에 도쿠다이지의 별장을 개조해 지었다고 한다.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돼 지금은 현관 겸 본당 역할을 하는 방장(方丈)과 일부 건물만 남아 있다. 석정은 일종의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 양식인데 돌과 모래로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이다. 료안의 석정은 실제로 나무도 풀도 꽃도 없고 하얀 모래(白砂)와 돌만으로 구성된 약 250㎡의 작은 정원이다. 처음에는 돌과 모래만 남겨두고 정원이라고 하는 것이 의아스러웠지만 차분하게 앉아 돌 정원을 바라보자니 화려한 정원보다 더 고졸한 맛이 풍겨 왔다.
관광객들은 정원 바로 앞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정원을 바라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 엄숙하게 돌을 바라보며 지긋이 눈을 맞춘다. 석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5개, 2개, 3개, 2개, 3개씩 무리지어 있는, 합쳐서 15개의 크고 작은 돌이 배치돼 있다. 물을 상징하는 자갈이 전체 15개의 돌을 둘러싸고 있는데 돌이 놓인 위치 때문에 한눈에 보이는 돌은 14개뿐이라고 한다. 나머지 한 개는 깨달음을 얻어야 보인다고 하지만 이는 말을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은 이야기 같다. 추상적이면서 해석이 어려운 석정이지만 긴장감이 없고 편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것은 석정을 둘러싸고 있는 흙담 때문이다. 낮고 갈색인 아부라 도베이라고 불리는 이 흙담은 그 자체가 유명하다.
영화·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대나무 숲 일품
유채나 찹쌀을 씻고 생긴 물을 섞어 반죽한 흙으로 만든 담장은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서 연륜까지 느끼게 한다. 흙담에 유채를 섞으면 더욱 강고하게 되고 방수성(防水性)도 높아진다고 한다. 멋스러우면서도 실용성이 있는 담장이다. 묘한 것은 담장이 주변의 풍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바깥의 풍경까지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낮고 길쭉하다. 지붕도 널빤지를 너와로 올렸다. 외부와 내부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보이게 하는 무대장치처럼 느껴졌다.
료안지의 석정은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15세기 유명화가였던 소아미라는 사람이라는 설도 있고 료안지 주지였던 선승 도쿠호 젠케쓰라는 이도 있다. 료안지는 어느 계절에 와도 색다른 맛을 풍기지만 벚나무가 만개하기 시작하는 봄에 와야 제 맛을 느낀다고 한다. 료안지 석정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1975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이곳을 방문해 크게 칭찬하면서부터다. 교토의 이름 높은 사찰이 모여 있는 아리시야마 역 근처에는 지쿠린이라 불리는 대숲이 나온다. 한아름도 넘는 굵은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구쳐 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며 유명해졌고 이후 드라마와 CF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숲이다. 대략 450m 남짓한 길이 깔린 이 대나무 숲은 일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자주 찾는 곳으로,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입고 데이트하거나 웨딩 촬영하는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특히 연인과 함께 찾는다면 대나무 숲 끝에 있는, 인연을 맺어준다는 노노미야 신사에 들러 소원을 빌면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 후나야 수상가옥이 만드는 이채로운 풍경
교토 최북단에 있는 이네(伊根)의 후나야(船屋)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이 어촌마을이 특이한 것은 집들이 모두 수상가옥이기 때문이다. 후나야라는 말이 ‘배의 집’을 말하는 것이니 선박가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5㎞에 걸쳐 230여 채의 후나야가 바다에 아슬아슬하게 늘어선 모습이 이색적이다. 마치 홍콩의 란타우 섬에 있는 수상가옥 마을인 타이오(Tai-O)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다. 집의 1층은 뚫려 있는데 바닷물이 들락거리거나 작은 배가 지나다닌다. 고기잡이를 마친 배들은 일렬로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집의 1층에 정박시킨다. 뱃집이 바다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어서 바닷물이 밀려오는 만조가 되면 마치 집이 하나의 선박처럼 떠오르는 것 같다. 일본이면서도 일본 같지 않은 이 풍경이 이채로워서인지 연간 2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관광객이 늘면서 가정집이었던 후나야를 숙소로 개조한 민박집과 여관이 제법 많아졌다. 후나야의 민박집에 묵으면 바닷물 위에서 잠을 잘 수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양조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네만카이(伊根‶開)를 빚어내는 무카이주조(向井酒造)다. 붉은 빛을 띤 이네만카이는 ‘고대미’라 부르는 흑미로 사케를 만들었다. 술은 향기가 뛰어나고 맛이 달다. 용이 승천하는 듯한 아마노 하시다테
이네에서 바닷길을 따라 30분 정도 가면 일본의 3대 절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마노 하시다테가 나타난다. ‘하늘에 닿는 다리’라는 별명이 붙은 곳으로 길이 3600m, 폭 40~110m의 바다 위 소나무 길을 볼 수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8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바다 위에 기분 좋은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소나무 가로수길 좌우로 바다가 보이는 백사청송의 길은 교토 사람들의 자랑이다. 이곳에 가면 머리를 다리 사이로 숙이고 하시다테의 풍경을 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리 사이로 거꾸로 풍경을 보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거나 하늘에 닿는 다리로 보인다고 한다.
하시다테 위쪽으로 모토이세 고노 신사도 가볼 만하다. 일본의 국보와 중요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중요한 신사 중 하나다. 하시다테 근처에는 와이너리도 있다. 비열처리로 만든 과육주는 일본 내 와인 콩쿠르에서 동상과 장려상을 받을 정도로 맛이 좋고 품질도 뛰어나다. 여행정보
교토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가 이노이치라멘(사진)이다.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에 등재되기도 한 이노이치라멘은 깔끔하면서도 담백하다. 라멘하면 떠올리는 진한 돼지고기 육수나 닭고기 육수를 쓰지 않았다. 야채 육수 특유의 진한 단맛이 인상적이다. 이노이치라멘은 특이하게도 유자 껍질을 올리거나 다시마 가루를 넣어서 먹기도 한다. 유자의 상큼한 맛이 라멘 맛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진한 육수 맛 라멘을 좋아하는 이들은 다소 실망하기도 한다.
교토=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