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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 사건에 대해 일반 법원 형사재판부에서 ‘처벌’을 할 것인지, 가정법원 소년재판부에서 ‘보호처분’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면서 중요한 판단 요소 중 하나는 개선 가능성이다.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처럼 개선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 결과가 참혹해 유족의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는 범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형사처벌로 소년을 사회와 격리해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절도, 단순 폭행 등 대부분 소년 범죄에서는 그런 범죄에 이르게 된 전후 사정과 소년의 환경적 요소를 살펴 보호처분으로 소년의 성행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어려서 부모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거나, 주취폭력 버릇이 있는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거나, 지독하게 가난하거나, 분노조절 장애, 혹은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년이 대부분이다. 태어난 지 10년을 좀 넘어선 소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상황이기에 가정을 외면하고, 그러다 보니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려 절도 등 범행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미 학교와 사회에서 수차례 질책을 받았음에도 다시 잘못을 저질러 법정에서 마주하게 된 소년들을 바라볼 때 한 번쯤 이어령 선생의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라는 시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싶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콩나물시루에/물을 주는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매일 콩나물에 물을 주는 일과도 같다고 했습니다/물이 다 흘러내린 줄만 알았는데/헛수고인 줄만 알았는데/저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
밑 빠진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고 그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헛수고한 것 같지만 그렇게 계속 물을 붓다 보면 어느덧 쑥 자라 시루를 꽉 채운 콩나물을 볼 수 있듯이 아이들도 그렇게 자란다는 내용이다.
일벌백계의 처벌만으로는 소년을 바꿀 수 없다. 사회가 나서서 소년을 도와주고, 가르치고, 지켜봐 주는 관심이 계속돼야 소년을 바꿀 수 있다. 그래야 (범죄) 소년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성백현 < 서울가정법원장 slfamily@scourt.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