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모터스포츠 대회인 F1(포뮬러원)과 봅슬레이 썰매는 깊은 인연이 있다. 1000분의 1초까지 다투는 봅슬레이 썰매는 ‘얼음 위의 F1’이라고 불린다. 페라리와 맥라렌 등 굴지의 슈퍼카 브랜드들이 F1 서킷과 함께 봅슬레이 트랙에서도 경쟁한다. 봅슬레이 썰매를 제작하는 기술력이 슈퍼카 제조 기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페라리, 맥라렌 외에 현대자동차와 BMW 등도 봅슬레이 썰매를 제작한다.

봅슬레이 썰매는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선수들이 밀기 쉽게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가볍고 강한 탄소섬유 소재로 썰매를 만든다. 공기역학, 날과 얼음면의 마찰력 등도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썰매 대당 가격이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썰매는 선수들이 앉을 수 있는 구조와 유리섬유나 금속으로 만든 덮개, 출발할 때 썰매를 미는 푸시핸들, 도르래를 이용해 방향을 조절하는 2개의 조향장치, 레버로 당기는 브레이크, 두 쌍의 독립된 금속 날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경기 기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봅슬레이 본체에 작용하는 공기저항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선수들의 체형과 최적의 탑승 자세를 고려한 설계 기술 및 고강성 저진동 동체, 풍동실험을 통한 공기저항 저감 등이 썰매 제작에 적용된다. 선수들이 착용하는 헬멧도 다양한 실험을 거친다.

썰매 날도 빙질과 날씨에 대비해 다양한 모양으로 준비한다. 맑은 날씨에는 얇은 날을 이용해 접촉면을 최소화한다. 흐리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두꺼운 날을 달아 접촉면을 넓힌다. 속도에선 손해를 보지만 안전성을 높인다. 빙질 대비도 한다. 얼음에 적당한 물기가 있으면 마찰이 적어 썰매가 빨리 달릴 수 있다. 기온이 낮아 얼음에 물기가 없으면 얇고 날카로운 날을 사용한다. 선수들의 신발은 출발할 때 중책을 맡는다. 가벼우면서도 달려 나갈 때 가해지는 변형과 뒤틀림을 지지해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 신발 바닥에는 지름 1~1.15㎜인 스파이크용 핀이 250개 이상 꽂혀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페라리는 이탈리아, BMW는 미국, 맥라렌은 영국 봅슬레이 팀을 후원한다. 현대자동차가 만든 썰매는 여자 2인승 대표인 김유란(26·강원BS연맹)-김민성(24·동아대) 조가 탄다. 한국 봅슬레이의 간판 원윤종(33·강원도청)-서영우(27·경기연맹) 조는 라트비아산 BTC 썰매를 타고 출전한다. 이 썰매는 원윤종·서영우 조가 2015~2016 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월드컵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을 때 탔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