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열광하는 필리핀 청소년 찾아 간 국악인들
국내 전통예술인 40여명의 자선 공연이 지난 26일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필리핀 세부의 보이스타운에서 열렸습니다. 오승용 주필리핀대사관 세부분관 총영사(앞줄 왼쪽)도 참석했습니다. 이 행사는 올해로 15년째, 총 17번째 공연입니다. 국악인 등 예술인들과 스태프들이 자비를 들여 매년 1~2회 필리핀 여러 지역에서 개최해 온 ‘부지화(不知畵) 공연’은 일종의 문화 봉사 활동입니다. 보이스타운은 필리핀에서 정규교육을 받기 힘든 저소득 청소년들을 선발해 숙식은 물론 정규 중·고등학교(5년) 과정을 무료로 교육하는 기숙 학교입니다.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필리핀 청소년들이 과연 국악을 좋아했을까요. 왜 전통예술인들은 매년 필리핀 청소년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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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부지화 17 아리랑 꽃피다(Blossom of Arirang)’의 공연이 열린 무대입니다. 보이스타운에서 야외 강당 겸 체육 시설로 쓰는 곳인데 학생들이 직접 무대를 꾸몄습니다. 학교 운영을 총괄하는 이에밀란 수녀님(분원장)에 따르면 약 2100명인 재학생들은 모두 필리핀의 저소득층 중 선발합니다. 학교 수녀님들이 필리핀 여러 섬으로 직접 파견 돼 입학생을 모집합니다. 부모의 월 수입이 5000페소(한화 약 10만원) 미만이거나 5자녀 이상 가정, 한 부모 가정 등이 대상입니다.

평균 입학경쟁률은 10대1. 학교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대학 진학률도 높아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가족관계증명서 등이 없는 필리핀에선 입학 대상인 지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한 뒤 입학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이유입니다. 아무튼 학교에서 정규 수업 이외에 봉제와 자동차정비, 기계, 용접, 컴퓨터 등 각종 기술도 가르쳐 줍니다. 이 에밀란 수녀는 “미국이나 유럽 등 주로 선진국 후원자들이 낸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거의 후원이 없는 게 아쉽다”고 귀뜸했습니다. 마리아수녀회는 서울과 부산에 꿈나무마을 보육원을, 필리핀·과테말라·멕시코·브라질 등 6개 국가에선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공연 준비에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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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꾸민 무대는 소박했지만 공연자들은 감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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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리허설을 시작합니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4호 삼현육각 보유자인 최경만 명인(위 가운데)이 태평소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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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30도에 육박하는 날씨 탓에 김승희 명인(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김윤덕류 가야금 이수자·위 사진 왼쪽)은 버스에서 가야금 연주를 합니다. 온도가 높으면 가야금이 제 소리를 내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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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향두계놀이보존회의 서은주씨, 유은주씨, 김순이 대구지부장, 조윤희 부산지부장, 이서현 시흥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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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한국국악협회 포천지부의 임용순씨, 신필호씨, 송장희 지부장, 황혜연씨, 김종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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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향두계놀이보존회 대전지부의 조옥선씨, 임인숙 지부장, 오현승 사무국장, 김종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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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분장도 도와줍니다. 저 멀리 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받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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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필리핀 청소년들과 젊은 국악인들의 즉흥 연습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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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일부 학생들은 강당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인근 여학교(걸스타운) 학생들도 초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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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가 넘어서자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7시30분 공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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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만 명인의 태평소 연주로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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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와 춤이 이어집니다. 학생들의 박수 소리는 열정적입니다. 특히 황진경씨가 필리핀 음악에 맞춰 한국무용을 선보이자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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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숙 명창은 아예 객석으로 내려와 구성진 아리랑을 부릅니다. 유 명창의 선창에 따라 학생들도 따라 부릅니다. 이어진 국악인들과 학생들의 합동 무대는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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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이 이어지자 학생들의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답의 의미로 2000여명의 학생들이 단체 춤을 준비했네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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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 무대로 올라 온 학생들의 표정은 신나고 밝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쉽지 않은 음악을 열심히 즐기고 호응한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공연자들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유지숙 명창은 “필리핀의 청소년 관중들로부터 오히려 열정과 에너지를 얻고 힐링되는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부지화 예술단은 이날 학생들이 마련한 저녁식사를 하고 일부 회비를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설장고춤을 춘 강은숙씨(명성지퍼 대표)는 학생들이 재봉 실습에 사용하도록 지퍼를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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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인 ‘부지화(不知畵)’는 ‘그림을 보고도 그림인지 알 지 못한다’는 뜻인데, 아름다운 우리 전통예술을 대중들이 잘 깨닫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15년째 이 공연을 이끌고 있는 강현준 부지화 대표는 “필리핀에서 K팝과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 뿌리가 되는 한국 전통예술을 현지 청소년들과 함께 나누며 한류의 영역을 넓히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필리핀에서 더 뜨거운 반응을 얻어 기쁘다”며 “또 미래 필리핀을 이끌어 갈 청소년들과 한국의 우호 증진에도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세부=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