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LED영상으로 무대 배경 '척척'… 러시아 특유 분위기 연출 압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무대 전체에 눈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10명이 넘는 배우가 발레 군무를 선보였다. 롤러 블레이드를 신고 피겨스케이팅을 하듯 우아한 동작으로 무대 위를 누볐다. 스케이트를 즐기는 남녀의 즐거운 모습에 신나는 음악이 어우러지니 낭만적인 눈꽃 나라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국내에 자주 소개되는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의 힘 있는 쇼뮤지컬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매력이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다음달 25일까지 계속되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한 장면이다. 지난 10일 개막한 이 뮤지컬은 러시아의 전통 있는 오페라·뮤지컬 극장이자 프로덕션인 ‘모스크바 오페레타 시어터’가 창립 90주년(2017년)을 맞아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쓴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원작이다. 현지에서 2016년 초연했으며 해외 라이선스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는 한국 사람이지만 원작의 연출을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 방식이다.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카레니나(옥주현·정선아)가 젊은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이지훈·민우혁)와 사랑에 빠져 파국을 맞는 얘기다.
러시아 귀족 사교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화려한 무대 연출이 볼거리다. 무대 세트를 아주 크게 꾸미거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는 건 아니다. LED(발광다이오드) 패널이 달린 높이 5.3m의 직사각형 세트 4개가 이 작품 연출의 핵심이다. 이 세트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LED 패널 영상으로 무도회장, 스케이트장, 거대 저택 등 극에 필요한 거의 모든 배경을 만든다. 영상이 큰 비중으로 활용되지만 거대한 실물세트를 쓰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아쉬운 점이 없다. 무도회 장면에서는 실물과 영상 샹들리에가 함께 나온다.
다만 보수적 사회 구조와 개인의 행복 간 대립을 부각하며 ‘누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나’라는 메시지를 던진 원작의 의미는 반감됐다. 인물의 감정과 고뇌를 표현하는 대목이 상당 부분 생략된 결과다. 예컨대 카레니나가 얼마나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목말라 있는지를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나, 일 때문에 바쁜 브론스키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조르는 모습이 그저 욕망에 충실한 여자의 일탈로 보이기도 한다.
199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미국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도 “카레니나의 복잡한 심리를 변덕스럽게만 표현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 작품도 비슷하다. 6만∼14만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다음달 25일까지 계속되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한 장면이다. 지난 10일 개막한 이 뮤지컬은 러시아의 전통 있는 오페라·뮤지컬 극장이자 프로덕션인 ‘모스크바 오페레타 시어터’가 창립 90주년(2017년)을 맞아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쓴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원작이다. 현지에서 2016년 초연했으며 해외 라이선스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는 한국 사람이지만 원작의 연출을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 방식이다.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카레니나(옥주현·정선아)가 젊은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이지훈·민우혁)와 사랑에 빠져 파국을 맞는 얘기다.
러시아 귀족 사교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화려한 무대 연출이 볼거리다. 무대 세트를 아주 크게 꾸미거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는 건 아니다. LED(발광다이오드) 패널이 달린 높이 5.3m의 직사각형 세트 4개가 이 작품 연출의 핵심이다. 이 세트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LED 패널 영상으로 무도회장, 스케이트장, 거대 저택 등 극에 필요한 거의 모든 배경을 만든다. 영상이 큰 비중으로 활용되지만 거대한 실물세트를 쓰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아쉬운 점이 없다. 무도회 장면에서는 실물과 영상 샹들리에가 함께 나온다.
다만 보수적 사회 구조와 개인의 행복 간 대립을 부각하며 ‘누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나’라는 메시지를 던진 원작의 의미는 반감됐다. 인물의 감정과 고뇌를 표현하는 대목이 상당 부분 생략된 결과다. 예컨대 카레니나가 얼마나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목말라 있는지를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나, 일 때문에 바쁜 브론스키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조르는 모습이 그저 욕망에 충실한 여자의 일탈로 보이기도 한다.
199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미국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도 “카레니나의 복잡한 심리를 변덕스럽게만 표현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 작품도 비슷하다. 6만∼14만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